UPDATED. 2018-12-18 13:37 (화)
#프레임
#프레임
  • 이나연 에디터
  • 승인 2017.12.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월호] 21세기를 되새김해야 하는 순간, 미래의 그들은 우리의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까? 새로운 개념의 탄생은 그럴 때 유용하다. 미국 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제시한 ‘프레임’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세상을 읽고 씹고 쓰는 일이 비교적 수월해졌다. 개인의 담장 밖 시각과 사회 현상 전반을 설명하는 틀로써 작동한다. 프레임은 그 어떤 분야보다 미디어에서 활용하기 좋은 개념이다. 그보다도 미디어 자체가 프레임이 된다. 우리는 프레임이라는 키워드가 미디어에서 어떻게 자리 잡는지 시각을 제공하는 책 세 권을 선별했다.

 


 

“저희는 내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6년 10월부터 올해 초까지 뉴스만 보았던 것 같다. 특종을 통해 접한 대한민국의 어두운 민낯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사람들은 뉴스가 웬만한 영화나 드라마보다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괴감에 빠졌고 혼란스러웠다. 그때, 대한민국에 휘몰아치던 혼돈의 파도 속에서 굳건하게 제자리를 지킨 사람이 있었다. JTBC 보도 담당 사장 손석희. 대중은 언제부터인가 그의 입에서 나올 말에 신경을 집중했다. ‘손석희 저널리즘’에 매료된 것이다.

『손석희 저널리즘』은 어쩌면 손석희를 향한 대중의 관심에 편승하기 위해 출간한 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요즘 사회가 왜 손석희를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라고 평가하는지, 왜 사람들이 그가 보여주는 저널리즘에 열광하는지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책은 손석희를 제대로 보기 위해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간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부역방송을 해야 했던 앵커로서의 부끄러움은 그의 가슴에 ‘공정방송’이라는 리본을 달아주었고 이후 차츰, 그리고 이내 우리가 아는 ‘손석희’가 되었다. 3년 여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그는 ‘손석희의 시선집중’으로 다시 MBC에 돌아왔다. 아침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의 특성을 활용해 사회 문제에 보다 발 빠르고 밀접하게 접근했다.

그러나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출된 대통령은 언론을 장악했다. MBC 언론 노조는 저항했지만 돌아온 건 탄압이었다. 이미 프리랜서였던 손석희도 정부가 싫어하는 사회 문제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탄압의 대상이었다. 결국 2013년, 30년 동안 재직한 MBC를 떠나 중앙일보사의 종합편성채널(종편) JTBC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들은 MBC를 버리고 심지어 당시 논란이 거셌던 종편으로 간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우려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한 번 도전해보겠다’는 각오를 표했다.

JTBC로 간 손석희는 자유로웠다. 삼성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어떤 언론사보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정부를 지켜보았다. 저자는 손석희가 JTBC에서 보여준 저널리즘을 ‘맥락 저널리즘’이라고 말한다. 여러 가지 뉴스를 나열해서 보여주는 것에 그쳤던 일반 뉴스들과 달리 JTBC 뉴스는 선택과 집중의 자세로 세상을 바라봤다. 사건을 재구성하고, 계속해서 진실을 파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러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다. 대다수 언론들은 시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정부의 대변인을 자처했다. JTBC만이 세월호가 무슨 이유로 침몰했고, 학생들을 비롯한 승객들이 왜 구조되지 못했는지 파헤치고자 했다. 참사 직후 진도 팽목항에 직접 내려가 수일 간 사고 내용을 보도했던 앵커 본인은 물론 이후 200여 일 간 현장을 지켰던 JTBC 취재진이 만들어낸 세월호 관련 뉴스는 손석희의 맥락 저널리즘이 빛을 발하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그것은 절정에 이른다. 촛불 집회 현장에서 나타난 ‘손석희와 JTBC 신드롬’은 필연적이었다.

정권이 교체되어도 사회를 바라보는 손석희의 자세는 변함이 없다. 그는 언제나 진보와 보수 프레임에 속하지 않는다. 혹자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비판한다고 서운해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손석희가 걸어온 길이다. 정치에 뜻이 없기에 어느 누구의 비위를 맞춰줄 생각이 없다. 언제나처럼 대중의 입장을 대변할 뿐이다. 손석희 저널리즘은 아마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손석희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손석희 저널리즘』을 통해 합리적이고 공정한 언론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이유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프레임에서 자유로운 ‘공정방송’이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손석희 저널리즘』

정철운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7년 6월

 


 

광장에 촛불은 어떻게 타올랐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가 전국으로 확산되며 ‘촛불의 진화進化’ 바람이 채 수그러들지 않았던 2008년 9월이었다. 불과 7개월 전 임기를 마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민이 참여하는 새로운 온라인 토론 공간을 표방하며 ‘민주주의 2.0’ 사이트를 개설했다. 대통령직 퇴임과 함께 현실 정치와의 거리 두기를 ‘미덕’으로 삼았던, 전직 대통령들의 일반적인 행보와 대치되는 이 같은 ‘파격’에 세인들의 입방아가 쉴 줄 모르던 가을이기도 했다.

토론 형식이나 진행, 시스템 등이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참여자들의 의사로 결정되는 시스템이었다. 이에 대해 혹자는 ‘다음 아고라’나 ‘서프라이즈’ 같은 기존 토론 사이트에서 한 걸음 나아간 것으로 평가했고, 당시 집권 여당을 위시한 보수 세력과 일부 언론은 노 전 대통령이 친노 세력을 결집하고 집단 여론을 형성해 정치적 반목과 대립을 심화시킨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들 범보수진영 또한 정당은 정당대로, 언론사는 언론사대로 그들만의 인터넷 게시판을 신설해 대중과의 소통 강화를 논의하고 참여를 높이려는 시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의견을 표출하는 시민들을 다루는 것이 세력 유지에 중요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촛불이 발화한 광장과 광장을 메운 시민, 그리고 그들의 매개체 미디어가 결합된 총체 ‘미디어 시민’이 궤도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미디어 시민의 탄생』은 청년 논객 한윤형이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후 4년 만에 발표한 책이다. 저자는 ‘미디어 시민’이 어디서 나타났고 어떻게 형성됐는지, 그 힘은 무엇인지 탐구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미디어 운동의 시작과 뉴미디어의 탄생과 영향을 들여다보고 있다. 뉴미디어의 시대적 흐름을 PC통신(1990년대 중반),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의 이동(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제로보드 게시판을 기반으로 한 정치 토론 커뮤니티 성립(2000년~2004년), 개인 블로그 번성과 블로그스피어 생태계 구축(2003년~2007년), 취향 커뮤니티들의 정치·사회 게시판 신설(2008년), 트위터의 유행(2009년), 페이스북 유행(2010년대) 등으로 정리했다.

또한 그는 ‘미디어 리터러시(다양한 매체를 이해하고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능력)’를 가진 사람들의 숫자가 많이 늘어났고, 이런 미디어 시민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2008년과 2016년 촛불시위에서 있었던 ‘미디어-시민’들의 지나친 비폭력의 강조에 불편해하는 좌파들도 있었다. 물론 모든 시위를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2016년의 시위는 상황과 성격을 볼 때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들은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라, 모든 권력기관에 헌법에 정해진 바대로 체제를 정상화하기를 명령하기 위해 나왔다. 비폭력과 장내 정돈은 그들이 자기규율을 가질 수 있는 주권자임을 증명했고, 그러지 못했던 방탕한 권력 기관들에 대한 경고가 되었다. (중략) 결국 12월 3일의 정부 수립 이래 사상 최대규모의 촛불 집회는 다른 생각을 하던 국회의원들이 민의를 따라 행동하게끔 만들었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의 대통령 탄핵 가결과 2017년 3월 10일의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선고가 그렇게 가능했다.”(529쪽)

이렇듯 『미디어 시민의 탄생』은 일제강점기 언론 운동부터 2017년 현재 일어나고 있는 미디어 운동까지 방대한 역사를 세세한 정치·사회적 맥락으로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있다. 대중적 미디어 운동 입문서나 정치역사 입문서로도 활용할 가치가 높다. 책을 통해 민주시민 각자가 미디어를 매개로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실현하고 기준을 따를 것인지, 미디어의 바른 역할이란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길 기대해본다.

 

『미디어 시민의 탄생』

한윤형 지음 | 시대정신연구소 | 2017년 5월

 


 

심리학에 녹아든 프레임

종종 뉴스를 볼 때 ‘프레임을 덧씌운 편파적 보도’라는 표현을 접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악의적으로 편집하거나 프레임을 짜 맞춘 뉴스가 사람들을 홀리고, 이른바 ‘팩트’인가 아닌가에 대한 날선 설전이 뒤따르기도 한다. 소위 ‘색깔 논쟁’은 프레임 싸움의 대표적인 예다. 사상이 다르다는 명분으로 상대진영을 향해 이분법적으로 색깔을 구분하고 덧칠한다. 이렇듯 프레임은 그동안 언론, 정치 분야에서 부정적인 장치로 활약해왔다.

최인철 교수의 『프레임』은 심리학에 프레임을 적용시킨 작품이다. 심리학 안에서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의미한다. 사람을 만날 때, 일상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이 ‘마음의 창’은 상황을 타개하는 기준이 된다. 사람들은 제각각 크기도, 모양도, 재질도 다른 이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타인과 소통한다. 이 창은 유년시절부터 단단하게 쌓아올려 이미 굳게 닫힌 철문일 수도, 환경에 따라 쉽게 깨져버리는 유리문일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자부한다. 매 순간 내리는 선택이 그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확신한다. 또, 자기가 구상하고 있는 생각이 설명을 통해 타인에게 명확하게 전달될 것이라 믿는다. 『프레임』은 이러한 확신들이 전부 착각임을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객관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불확실하고 애매한지,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알게 된다. 저자는 우리가 ‘프레임을 통해서 채색되고 왜곡된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앞에 펼쳐진 세상은 각자의 프레임을 통과한 공간일 뿐이다. 프레임은 일상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쇼핑몰에서 옷을 고를 때, 점심 메뉴를 선택할 때, 심지어 웹 서핑을 하면서 무심결에 클릭하게 되는 것 하나에도 프레임이 작동한다. 이 선택과 결정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프레임 때문에 선택되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너의 한마디”란 말은 있어도, “너의 인생에 힘이 되어준 나의 한마디”는 없다. 우리가 겸손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영향력은 좀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내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가지는 영향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라는 책의 부제처럼, 심리학에 녹아든 프레임을 통과하면 ‘나’는 변화한다. 무슨 일이든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진다. 그렇게 변화한 내가 누군가의 프레임이 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타인의 의사결정과 선택에 내 모습이 프레임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책은 우리의 신념과 기대부터 바꾸라고 조언한다. 신념이 달라지면 우리의 행동이 바뀌고, 그 행동에 반응하는 타인의 행동까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 개정판은 열 개의 챕터 중 마지막 챕터에서 ‘지혜로운 사람의 11가지 프레임’을 소개하고 있다. 늘 타인과의 ‘비교 프레임’을 적용시켜 스스로 열패감에 빠지거나 ‘회피 프레임’에 휘둘려 모험보다 안정된 환경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물건을 구매할 때 ‘소유 프레임’에 갇혀 집착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효과적인 처방전이다. 이 프레임들은 우리 ‘삶의 결과물들을 극적으로 바꾸어놓을’ 것이다. 책장을 덮고 나서 한결 더 지혜롭고 행복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프레임–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최인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8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