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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한 컷] 독립을 염원한 사람들의 이야기
[8월의 한 컷] 독립을 염원한 사람들의 이야기
  • 유지연 에디터
  • 승인 2017.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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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자리에서 싸우거나 견디거나

ⓒ박열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영화사 그림·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주)외유내강
ⓒ 박열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영화사 그림·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주)외유내강

[8월호] 72년 전 8월, 한 나라가 독립했다. 온 천지가 기쁨과 흥분으로 뒤덮였고, 사람들은 목이 쉬어 터지도록 국기를 흔들며 해방을 환호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어둠의 시간을 보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곳에서 회한으로 얼룩진 그리움으로 하루하루 견뎌내기도 했고,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무장단체를 만들어 맞서기도 했다. 모두 다른 자리에 있었지만 독립을 염원하는 마음만은 하나였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보는 내내 피가 차갑게 식기도, 가슴에서 불덩이가 솟구치기도 할 것이다. <박열>, <군함도>, <밀정>의 한 컷을 만나보자.

 


 

내 나라를 위해서 ‘개새끼’가 된 사내, 박열

ⓒ박열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 박열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 것 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박열, <개새끼> 부분 발췌,

《조선청년》, 1922.

첫 문장부터 심상치 않다. 스스로 ‘개새끼’임을 천명하고 있는 시는 패기가 넘친다. 1922년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는 학생들이 펴낸 잡지 《조선청년》에 박열이 기고한 시다. 박열은 1919년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시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 해 10월 일본의 심장부인 동경으로 간 그는 청년들과 무정부주의 단체를 만들어 본격적인 독립 운동을 계획한다.

시 만큼이나 영화에서의 첫 등장 역시 강렬했다. 생계유지를 위해 인력거를 끌던 박열은 터무니없는 돈을 던지며 가려고 하는 일본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다. 이윽고 뿌리치는 손길에 땅으로 나뒹굴며 욕설을 내뱉는다. 영화의 배경은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시점이다. 관동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수십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자 일본 내각은 즉각 대책을 마련한다. 그러나 이 대책은 지진의 원인을 규명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것이 아니었다. 참사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한 곳으로 몰아 관심을 돌리려는 계산이었다. 그 결과물이 6,000여 명의 조선인들이 희생당한 관동대학살이다. 지진을 틈 타 우물에 독을 타 일본인들을 학살하려 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려 학살한 사건이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과 국제사회의 비난이 쏠리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일본의 입지를 살릴 수 있는 사건을 조작한다.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을 테러하려 한다는 명분으로 색출하기 시작했고, 희생양으로 박열을 선택한 것이다. 결코 고개를 숙이지도,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는 박열은 그들에게 눈엣가시였고, 정치 전략으로 이용할 제물로 제격이었다. 박열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제 발로 형무소에 들어간 그의 곁에는 동지이자 아내인 ‘가네코 후미코’ 가 있었다. <개새끼>를 읽고 반한 그녀는 박열과 처음 만나자마자 평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일본인임에도 일본의 폭력과 야만성에 분노하며 천황 일가의 존재를 부정한다. 황태자를 암살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이 언도되었을 때, 그녀는 법정에서 환호하며 만세를 외친다.

박열은 뜨거운 사내다. 그가 일본의 야만 앞에서 두려울 게 없었던 이유는 조선을 지키려는 뜨거운 열망과 신념이 뿌리내려 있었기 때문이다. 박열 자신이 조선이었고, 조선을 위해 기꺼이 개새끼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은, 조선의 개새끼였다.

이준익 감독은 <박열>을 통해 젊은이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신념을 그려냈다. 2017년을 지내는 우리들이 과연 박열처럼 뜨겁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 안에 있는 적을 찾아라

ⓒ영화사 그림·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 영화사 그림·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밀정>의 한 컷

정체를 숨긴 채 폭탄을 들고 기차에 올라선 김우진과 그와 내통하는 이정출이 드디어 하시모토와 대면하게 되는 장면이다. 밖으로 도망칠 수 없는 좁은 기차 안에서 일본 경찰과 의열단 간의 두뇌 싸움이 마침내 마지막에 도달한다. 과연 김우진이 하시모토에게 정체를 들켜서 붙잡히게 되는 건가 긴장하고, 혹은 이 위기를 어떻게 해쳐 나갈지 기대하게 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빛을 발한다. 흔들리는 기차 칸처럼 끊임없이 갈등했던 이정출이 매서운 하시모토의 눈빛을 아무렇지 않게 마주볼 때, 내공이 느껴진다. 전반부와 후반부를 이어주는 기차 장면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이 컷을 선정한다.

김지운 감독이 <놈놈놈> 이후로 8년 만에 송강호와 손을 잡고 영화 <밀정>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시대극과 스파이 물에 도전했다. 독립운동가에게 일제강점기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인물들의 내면을 영화를 통해 들여다보자.

<밀정>의 모티브가 된 사건은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이다. 1923년 경기도 경찰부 소속 경부인 황옥이 의열단 단원과 함께 의거에 필요한 폭탄을 상해에서 국내로 반입하다가 발각된다. 학계에선 황옥을 바라보는 시선이 서로 상반된다. 분명 의열단을 도와준 인물이 맞지만, 재판 과정에서 직접 일본 경찰의 지시를 받은 밀정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정출은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변절한 일본 경찰이다. 히가시 부장의 명령으로 하시모토 경부와 함께 의열단을 추적하게 되고, 의열단의 새로운 머리인 김우진에게 접근한다. 의열단은 이를 역으로 이용해 이정출을 이중 밀정으로 만든다. 실제 인물인 황옥과 김시현이 그랬던 것처럼 이정출은 김우진을 도와서 폭탄을 가지고 경성까지 가지만 결국 모두 체포당한다. 이후부턴 상상이 가미된다. 실제 의열단이 못 이룬 거사를 영화 속에서나마 성공한다. 폭파를 준비하는 장면과 어울리지 않는 라벨Ravel의 <볼레로Bolero>의 경쾌하고 웅장한 선율이 관객에게 통쾌함을 안겨준다.

영화 후반에 슬라브 무곡의 슬픈 가락을 바탕으로 의열단장 정채산의 나레이션이 나온다. “우리가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실패가 쌓여 그 실패를 딛고서 앞으로 전진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영화는 계속 실패를 거듭했던 의열단을 위한 위로였다.

 


 

군함도,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
ⓒ (주)외유내강

<군함도>의 한 컷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자 광복군 소속 OSS 요원 ‘무영’(송중기)은 독립운동의 주요 인사 구출 작전을 지시받고 군함도에 잠입한다. 일본 전역에 미국의 폭격이 시작되고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일본은 군함도에서 조선인에게 저지른 모든 만행을 은폐하기 위해 조선인들을 갱도에 가둔채 폭파하려고 한다. 이를 눈치챈 무영은, 조선인 모두를 데리고 군함도를 빠져나가기로 하고 “나갈 거요, 여기 있는 조선인들 다 같이”라며 이러한 사실을 알린다. 군함도 탈출을 앞둔 영화의 절정을 보여주는 컷이기도 하지만, 무영을 밝히는 촛불이 희망의 상징처럼 느껴져 군함도의 한 컷으로 선정했다.

예나 지금이나 인류의 공동 목표, 여러 과제 중 하나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안정을 꾀하는 것이다. 달력의 발명은 그래서 위대하다. 자연의 이치를 과학적으로 풀고, 개념화한 것도 대단한데 인간의 생활 방식을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정점은 기억을 기록으로, 종래에는 역사로 남길 수 있게 한 것일 테다. 그렇게 우리는 해마다 돌아오는 광복절, 1945년 8월 15일 그날을 소환한다. 불과 70여 년 전 일이다. 체험하지 못한 전쟁의 참상보다 강한 건 일제 강점기 그 시대를 견뎌냈던 내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다. 그 안에 ‘군함도’도 있다.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 항에서 18Km 떨어진 섬으로 원래 이름은 ‘하시마(端島)’다. 일본 해상군함을 닮아 군함도라고 불렸다. 19세기 석탄의 존재가 확인되고, 1890년 미쓰비시 기업의 소유가 되면서 일제 군수산업 기지로 떠오른다. 이내 일본 최초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고층 아파트가 건설되고, 학교는 물론 영화관에 수영장, 사교장이 생길 정도로 세련된 도시 형태를 갖춘다.

그런 곳을 ‘지옥섬’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나라 빼앗긴 고통을 온몸으로 체험한 사람들, 군함도로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다. 작업 환경 자체가 무시무시하다. 갱도만 해저 1,000m에 이르고 깊게 내려갈수록 경사가 가팔라서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버겁다. 갱내는 평균 45도 이상의 고온이었으며 가스 폭발의 위험마저 상당했다. 그런 열악한 곳에서 하루 12시간 쉬는 시간도 없이 일해야만 했다. 식사라고 해봤자 비료로 쓰는 콩깻묵으로 만든 주먹밥 두덩이, 아파서 일을 못 하면 이마저도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병에 걸리거나 탄광 사고로 또는 도망치다 걸려 맞아 죽었다.

군함도와 숨겨진 역사를 모티브로 한 영화 <군함도>. 7월 26일 개봉하기 한 달 전부터 숱한 화제를 뿌리며 흥행의 불을 지폈다. 먼저 전작 <베테랑>으로 1,300만 넘는 관객을 동원한 류승완 감독이 또 한 번 천만 관객 신화를 쓸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다. 220억 넘는 제작비와 함께 한류스타 송중기, 소지섭의 출연 역시 큰 주목을 받았다. ‘국뽕’ 논란도 잠시 일었지만, 개봉 후 분위기는 긍정적이다. 감독 말대로 다른 무엇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강제 징용이라는 비극적 역사, 전쟁의 폐해와 고통의 무게를 강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5일, 군함도를 포함한 일본의 근대산업시설 23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철강, 조선 그리고 탄광산업’이라는 이름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조선인 강제 징용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지워진 채 말이다. 우리나라 항의로 다행히 올해 12월 1일까지 조선인들의 강제 노역을 인정하고, 해당 시설의 희생자를 기리는 안내 센터를 설치한 후 그 결과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보고해야만 한다. 일본이 어떠한 조치를 할지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영화 <군함도>가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영령을 달래는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본다. 아울러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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