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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과의 가상 인터뷰] 에두아르 마네
[거장과의 가상 인터뷰] 에두아르 마네
  • 이나연 에디터
  • 승인 2017.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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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여름, 파리.

병들고 쇠약한 화가가 거처하는 아틀리에.

그곳을 바라보는 행인들의 눈빛에는 온정이 서려 있었다.

제비꽃 장식을 한 베르트 모리조 1872, 캔버스에 유채, 파리, 오르세 미술관 © 이숲, Electa
제비꽃 장식을 한 베르트 모리조 1872, 캔버스에 유채, 파리, 오르세 미술관 © 이숲, Electa

훌륭한 작품들에 둘러싸여 선생님을 뵙는군요.

그림 볼 줄 아시는군요! (갑자기 신랄한 말투로) 하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특히 비평가들이 그러지요. 그동안 내가 그 사람들한테 당한 걸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지만, 이런 얘기는 그만둡시다. 인간은 원래 환상을 품고 살아갑니다. 사람 사이 관계뿐 아니라 사람과 사물 사이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지요. 그리고 우리는 종종 이런 환상이 깨지는 경험도 합니다. 그래도 내게는 절대 깨지지 않는 불변의 확신이 하나 있습니다. 모든 그림의 주인공은 바로 빛이라는 겁니다. (손가락으로 벽에 걸린 초상화를 가리키며) 자, 보세요. 나는 그림을 그릴 때 실제로 자연에서 보는 색보다 더 밝은 색조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면 화면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빛은 하얗게 떨어져 내려 넓게 퍼집니다. 그래요, 나는 카바넬 같은 아카데미즘 화가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 사람을 눈여겨보세요. 꽁무니 깃털을 세운 공작새처럼 한껏 자신을 부풀리고, 무식한 인간들 앞에서 잘난 척하는 꼴이란… (마침 옆을 지나던 부인이 화가를 제지한다) 무슨 말인지 잘 아실 거요.

 

선생님은 회화를 통해 무엇보다도 진실을 추구했다고 확신하시나요

그렇게 거창한 말로 성급하게 단정 짓지 맙시다. 나는 그림에 사상을 표현하는 어리석은 짓 따위는 하지 않아요. 나는 할 일이 많아요. 지난 수 세기 동안 수없이 되풀이해서 그려진 카이사르의 죽음이나 독배를 마시는 소크라테스 따위의 주제를 또다시 그리느라 낭비할 시간이 없단 말이오. 나는 아틀리에 한구석에 차분히 자리 잡고, 성서의 세계나 신화의 세계가 아닌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 세계를 화폭에 옮깁니다. 내 그림에서는 모든 게 생동감 있고 순수하며 깊고 예리합니다. 그리고 검은색 강박이 있지요. 하지만 나도 물론 화려한 색채의 환희를 만끽할 줄 압니다. 그리고 눈으로 본 것을 대번에 그린다는 원칙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을 그린다면 나는 그 손을 꼼꼼히 정밀하게 그리지 않습니다. 왜냐? 그것을 자연과 분리된 개별적인 대상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손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자연 속에서 움직이는 상태 그대로, 동적인 상태로 그립니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 표현되면 성공한 겁니다.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면? 그러면 다시 시작합니다. 그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을 때 검은색 비누로 캔버스를 씻어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때로 어떤 긴장감이나 특이한 원근감을 강조하기 위해 정확성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수평선이나 지평선을 도저히 포착할 수 없을 때 아예 붓질을 멈추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벽이나 관목 숲을 배경으로 그려 넣기도 합니다. 나는 완벽한 사실성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자주 신랄하게 비판받으셨는데, 그 때문에 괴로움을 겪지는 않으셨나요

비난받고, 모욕받고, 따돌림당하고, 배척당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지요. 우리 세대 화가들이 아마도 역사상 처음으로 대중을 상대로 시작된 싸움을 이겨내고, 지독한 빈곤과 세상의 냉대를 견뎌내고 살아남은 사람들일 겁니다. 그런데 그런 비난을 받으면서도 나는 살롱전을 포기하지 않았소. 무의식적으로라도 살롱전의 그 우아함을 늘 선망해왔으니까. 글쎄요, 내가 상층 부르주아 계급 출신이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난 살롱전에서 거부당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 일로 정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낙선전에 출품했지요. 1863년 공식 살롱전에서 배척당한 화가들이 모여 개최한 전시회인데, 정말 기막힌 아이디어 아닙니까? ‘아카데미’라는 집단의 늙은이들이 우리를 거부했지만, 모든 파리 시민에게 낙선 작품들을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지요, 그것도 품위를 유지하면서 말입니다.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내시 같은 아카데미 화가들이 꿀단지에 모여든 벌떼들처럼 내 그림 앞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내 그림을 보고 어떻게든 비웃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어떤 태도도 보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지요.

 

풀밭 위의 점심 식사(습작) 1863, 캔버스에 유채, 런던, 코톨드 미술관 © 이숲, Luisa Ricciarini
풀밭 위의 점심 식사(습작) 1863, 캔버스에 유채, 런던, 코톨드 미술관 © 이숲, Luisa Ricciarini

그들은 선생님의 어떤 점을 비난했나요? 스페인 대가들을 모방했다고 생각했던 건가요?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너무나 성급하게, 단지 그림 몇 점만 보고는 누구의 영향을 받았다고 단정 짓습니다. 내가 피레네 산맥 건너편에서 어떤 본보기들을 보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의 모방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 아닙니까? 1865년 내 화폭에 재현할 의상과 소품들을 스페인에서 가져왔다고 해서 내가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사생아라고 말하는 것은 악의적인 비방입니다. 앞서 말한 1863년 낙선전에 나는 그림 석 점을 출품했습니다. 그중 풀밭 위의 점심 식사에 대해 특히 논란이 많았고, 비난도 많았습니다. 사실, 나는 그 작품을 완성하기 이 년 전부터 야외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경마장과 무희들에게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낙선전이 열린 지 이 년 뒤에는 올랭피아가 비난의 표적이 됐습니다. 좋게 말해서 비난의 표적이지, 그야말로 엄청난 십자포화를 맞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날 비난하던 사람들은 내게서 대체 뭘 비난해야 할지 자신도 잘 모르면서 그저 맹목적으로 비난했던 것 같습니다. 소위 점잖은 부류라는 사람들이 자신의 완고한 태도를 절대 바꾸지 않겠다는 아집을 그런 식으로 표출한 것이지요. 그들은 우리가 시작한 미학적 혁명을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으니까요. ‘우리’가 누구냐고요? 나와 내 주위에 모인 ‘인상파’라는 배짱 좋은 화가들이지요.

 

말이 나온 김에 그분들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세요.

르누아르, 모네, 세잔 같은 이들이 내가 낸 길을 따라왔고, 특히 내 방식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니, 지금 나를 인터뷰하러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들 얘기는 그만합시다. 1867년 살롱전에서 배제됐을 때 비록 동료 화가들이 위로해주긴 했지만, 난 소외당한 기분이 들었고… 혼자 난관을 헤쳐 나가야 했습니다. 화가들보다는 차라리 시인인 내 친구 스테판 말라르메와의 우정을 자랑하고 싶군요. 스테판은 몇 년 전부터 굳건한 우정으로 나를 지지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마흔이 지나서야 세상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걸 생각하면, 내 성공에 그의 공이 컸음을 알 수 있을 거요. 스테판은 내가 죽은 뒤에 혹시라도 내 가족이 어려움을 겪으면 자기가 돌봐주겠다는 의중을 비치기도 했어요. 난 정말 한 푼 없는 빈털터리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남들한테 알리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냉소적으로) 내 화가 친구들로 말하자면… 내가 1874년 나다르의 아틀리에에서 열린 첫 인상파 전시회에 불참한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인상주의’라는 독창적인 이념, 그 자유로운 표현 방식을 창안해서 이 화풍의 물꼬를 터준 사람이 누굽니까? 바로 납니다. 모네보다 훨씬 전에 내가 시작했습니다. 모네가 탁월한 화가인 것은 분명하지만, 모든 일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않습니까!

 

에두아르 마네

1832. 1. 23 파리에서 출생

1848 해군 입대 시도

1850 토마 쿠튀르 아틀리에에 들어감

1863 낙선전에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출품

1883. 4. 30 파리에서 사망

요즘도 그림을 그리시나요

건강이 몹시 나빠서 그리지 못합니다.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말도 들었고… 병치레에 전 재산이 들어갔어요. 어쨌거나… 내가 그림을 많이 팔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팔 기회가 생겼을 때 절대로 헐값에 넘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으려고 합니다. 아 참, 혹시 주위에 그림 애호가가 있다면 알려주시구려. 요즘 돈이 궁해서 좋은 가격에 그림을 넘길 용의가 있소이다. 비록 기자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지만, 당신한테도 팔 수 있어요. 자, 인터뷰는 이제 그만합시다. 좀 쉬어야겠어요. 집사람이 배웅해드릴 거요.

 

『위대한 화가들』

디미트리 조아니데스 지음 | 주일령 옮김 | 이숲 | 2017년 1월

* 이 콘텐츠는 이숲에서 제공받아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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