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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
  • 최유정
  • 승인 2017.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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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북스 편집장 조박선영 인터뷰

[12월호]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라고 생각했다. 정권이 바뀌고,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여성 관리자 비율을 확대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소위 진보정권의 여성 차별은 오히려 더 교묘하다”고 지적하는 한 페미니스트의 발언은 과연 무엇에서 기인했는가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이었다. 지난 7월 발간된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의 저자 26인을 대표해 이 책을 출간한 이프북스 조박선영 편집장을 만났다. 모든 의미에서의 ‘혐오’라는 인식을 또한 모두 제외한 채 오직 ‘페미니즘’에 대해 듣고자 했다. 이프북스는 1997년 창간해 2006년까지 총 36권을 세상에 내고 완간한 페미니즘 전문 잡지 《이프》의, 다시 시작된 ‘미래’다.

 


 

다시 돌아온 이프, 팟캐스트의 인기가 높다

《이프》(이하 이프) 완간, 누구 한 명의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미 모두 다 지쳐 있는 상태였거든요. 당시 대표의 판단이었어요. 잡지는 자본과 인력이 워낙 많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더 이상 할 수 없었고, 마지막 특집 주제를 ‘포르노’로 정했었는데 우리가 지치는 데 결정타였다고 할까요. 1년 여 간 포르노에 대한 심층 탐구, 취재를 했는데요. 사실 포르노라는 게 상당히 진이 빠지는 주제예요. 여성운동계에서도 성매매나 프로노 관련해서 일하시는 사람들은 늘 지쳐 있거든요. 이프도 포르노를 다루고 결국 완간을 맞아야 했던 거죠. 사실 당시 저는 이프에 없었어요. 제가 편집장을 맡을 순서가 되고, 리더가 된다는 게 너무 무서워서 그 1년 전에 도망했었거든요. 그러고 나서 그렇게 완간을 하게 되니 개인적으로 큰 죄책감을 안게 됐어요. ‘내가 두려움을 피한 결과가 이렇구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죠.

이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 정말 정신없이 살았어요. 스스로 이중삼중 족쇄를 채우고 옴짝달싹 못했던 시기를 지냈어요. 그러다 우연히 다시 일을 하게 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지낼 때 과거에 제가 만들었던 이프 홈페이지가 3년째 열리지 않고 있다는 얘길 들었어요. 이프 창립자 유숙렬 선생님이 ‘살려봐라’는 숙제를 던져주셨고, 다시 도망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이프를 잡게 됐어요. 이후에는 홈페이지 복구 작업에 열심이었어요. 데이터를 백업하고, 서버 이전하면서 당초 계획했던 6개월을 훌쩍 넘어 1년의 시간이 흘렀어요. 그러다 보니 홈페이지 복구와 함께 생각해 봤던 팟캐스트를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결국 홈페이지를 기다리지 못하고 팟캐스트부터 시작해버렸어요. (웃음) 아참, 팟캐스트는 그 전에 열렸던 이프 연말 모임에서 ‘이프가 팟캐스트를 했으면 좋겠다’는 정박미경 선배의 아이디어였어요. 전 원래 프로듀서 역할만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진행까지 맡게 됐고요. 이프의 처음 정신처럼 뒤집고 놀자는 마음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처음엔 이프의 과월호 주제를 팟캐스트 주제로 가져와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었어요. 그러다 새로운 콘텐츠를 말할 시간이 왔고 첫 주제로 세월호 참사를 정하게 됐죠. 현재 이슈로 정하고 나니 과월호 이슈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일단 기억 면에서 대화하기 좀 더 용이해졌어요. 그런데 세월호 참사라는 주제로 하자니 패널 섭외가 정말 어렵더군요. 세월호도, 이프라는 마이크도 부담스러웠을 거라는 생각이에요. 어찌 됐든 그렇게, 이프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 다루고 싶은 페미니즘은 무엇이었나

2017년 대한민국의 페미니스트가 과거와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입체적으로 다양한 톤을, 현재의 모습을요. 이프도 그랬어요. 과거에 논란이었던 문제들이 아직도 여전하거든요.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죠. 그런데, 진보 지식인 남성들이 잡은 정권은 더 교묘하게 여성들의 입을 틀어막아요. 마치 썩은 떡을 하나 주는 식으로요.

페미니즘에 대한 또 하나의 편견이 있는데요. 이프를 두고 인텔리 여성의 부르주아 잡지라고 하더군요. 페미니즘에서조차 문화주의와 페미니즘을 구분해요. 이론적으로 여성이 글자나 그림, 음악, 문화에 대해 표현하는 것을 눈엣가시로 보는 거예요. ‘쟤네들은 한가해서 저렇게 딴지를 걸고 있는 것이다’라고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취재를 하고 원고를 썼던 이들에 대한 이해 자체를 하고 싶지 않고, 여성들이 처한 실상을 알고 싶지 않은 거라고 생각해요.

이프 완간 이후 20년이 흐르는 과정 속에서 페미니스트 내에서도 세대 간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많이 잃어버렸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쉽게 말해 세대 차이라고 하죠? 이 단어의 의미가 갖는 다양한 변화, 영향들조차 어쩌면 남성들의 문화에서만 향유되었던 거예요. 여성들 사이에서도 세대 차이는 존재하지만 잘 얘기하지 않잖아요.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고 하지만 엄마처럼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죠. 딸과 엄마들은 과연 엄마처럼 살지 않는다는 의미에 대해 명확히 기록하지 못했던 것이더라고요.

우리나라 여성운동 1세대들은 감옥에 가면서 목소리를 내던 이들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엘리트’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구축했던 세계에서 그나마 여성운동 전문 단체가, 법적인 제도가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여전히 그 존재는 위태롭고 그야말로 ‘버티는’ 과정일 뿐인 거예요. 여성을 생각하고,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이슈들은 끊임없이 터지고 있는데 여성들은 단체들의 역할이나 연합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또 회의적이기도 했고요. 여성학자, 여성운동가, 비평가 같은 사람들의 세대 간 경험이 모두 다름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꽤 많아요. 세대 차이라는 문제에 대해 페미니스트들도 깊게 생각하고 창을 마련하는 계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제가 늘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 다루고 싶은 페미니즘은 무엇이었나

2017년 대한민국의 페미니스트가 과거와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입체적으로 다양한 톤을, 현재의 모습을요. 이프도 그랬어요. 과거에 논란이었던 문제들이 아직도 여전하거든요.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죠. 그런데, 진보 지식인 남성들이 잡은 정권은 더 교묘하게 여성들의 입을 틀어막아요. 마치 썩은 떡을 하나 주는 식으로요.

페미니즘에 대한 또 하나의 편견이 있는데요. 이프를 두고 인텔리 여성의 부르주아 잡지라고 하더군요. 페미니즘에서조차 문화주의와 페미니즘을 구분해요. 이론적으로 여성이 글자나 그림, 음악, 문화에 대해 표현하는 것을 눈엣가시로 보는 거예요. ‘쟤네들은 한가해서 저렇게 딴지를 걸고 있는 것이다’라고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취재를 하고 원고를 썼던 이들에 대한 이해 자체를 하고 싶지 않고, 여성들이 처한 실상을 알고 싶지 않은 거라고 생각해요.

이프 완간 이후 20년이 흐르는 과정 속에서 페미니스트 내에서도 세대 간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많이 잃어버렸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쉽게 말해 세대 차이라고 하죠? 이 단어의 의미가 갖는 다양한 변화, 영향들조차 어쩌면 남성들의 문화에서만 향유되었던 거예요. 여성들 사이에서도 세대 차이는 존재하지만 잘 얘기하지 않잖아요.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고 하지만 엄마처럼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죠. 딸과 엄마들은 과연 엄마처럼 살지 않는다는 의미에 대해 명확히 기록하지 못했던 것이더라고요.

우리나라 여성운동 1세대들은 감옥에 가면서 목소리를 내던 이들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엘리트’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구축했던 세계에서 그나마 여성운동 전문 단체가, 법적인 제도가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여전히 그 존재는 위태롭고 그야말로 ‘버티는’ 과정일 뿐인 거예요. 여성을 생각하고,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이슈들은 끊임없이 터지고 있는데 여성들은 단체들의 역할이나 연합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또 회의적이기도 했고요. 여성학자, 여성운동가, 비평가 같은 사람들의 세대 간 경험이 모두 다름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꽤 많아요. 세대 차이라는 문제에 대해 페미니스트들도 깊게 생각하고 창을 마련하는 계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제가 늘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책에 “페미니즘은 위험한 경계를 넘나들면서 고루하고 딱딱한 것을 무너뜨리는 작업이야. 위험한 아이를 다루는 엄마처럼 굴지 마”라는 부분이 있다. 정작 페미니즘이 아니라 페미니스트들에만 집중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일반적으로 ‘저것 봐!’라고 말하면 그게 무엇인지 찾는 데까지 한참 걸리죠. 우리 사회의 남성들의 인지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각종 심부름을 해야 하는 운명 속에서 언제나 심부름 할 준비가 돼 있어요. 하지만 남성들은 여성보다 그런 경우가 더 적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헤매는 과정이 생기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달이 아닌 손가락을 본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달을 보는 방향을 알아볼 수 있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페미니즘이고요. 페미니즘의 방향은 거기에 있어요.

모범적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공부도 잘 했고 칭찬받고 살았던 여성이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오니 갑자기 약자가 되어야 한다면 그 여성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넌 너무 극단적’이라며 나는 극단적이지 않다고 선을 긋는 일은 너무 성숙하지 못한 태도죠. 서로 조금 더 노력하고, 서로 배워가야 할 문제예요. 페미니즘 공부를 능동적으로 해 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여성문화이론연구소라는 곳이 있는데요. 특강 위주로 여성학 강의를 이어온 전문가들이 모인, 역사가 20년 정도 된 단체예요. 이프북스 외에 그들의 강의를 디지털화 해서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도록 제공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저 또한 이 사업을 하면서 공부를 많이 하게 됐어요. 이론을 한 번 듣고 나면 정리도 많이 되고, 시선도 더 넓어지더라고요. 공부를 권했다고 해서 너무 학문 안에 갇히지 말고 현실과 함께 봤으면 좋겠어요. 그 시기 역시 바로 지금 시대가 좋지 않을까 싶고요. 페미니즘 전문 도서를 소화할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우리 사회가 이해하는 페미니즘,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무엇인가

혹자는 말하죠. ‘여자들 목소리가 너무 커졌다’고요. 커진 게 아니라 이제야 다시 목소리를 내는 거예요. 여성운동, 활동 인프라는 너무 부족해요.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는 여성 피해 사건들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게 되는 점도 있고요. 자본과 인력 면에서 모두 결핍이 심하거든요. 페미니스트 개인의 활동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모두가, 연이어 벌어지는 상황에 지치더라도 외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여성 스스로가 ‘내가 여성으로서 이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이라는 문제의식을 버리지 말아야 하고요.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산력 있는 활동을 이어가고, 그러한 활동이 지지받기를 바라고 있어요.

이프북스는 페미니즘 도서를 계속 출판할 거예요. 어떤 방향일지는 부딪쳐 가면서 만들어가야 할 것 같고요. 이미 기존의 출판사들이 페미니즘 도서를 계속 출판하고 있는데 이프북스가 그 틈새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더 논의해봐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언제나처럼 저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함께 썼듯이 여전히 함께 하는 동료 페미니스트들과 논의해야죠.

일단 내년에 출간할 책들은 기존 페미니즘에서 다루지 않았던 주제를 담고 있어요. 주로 유럽이나 미국의 페미니즘 도서를 생각하고 있고요. 인도,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도서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와 닮은 면이 많거든요.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

유숙열 외 지음 | 이프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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