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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페미니스트의 고백
‘남자’ 페미니스트의 고백
  • 최유정 에디터
  • 승인 2017.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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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서민 교수 강연

[12월호] “전 여자인데도 페미니스트가 싫어요”

기생충학자,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서민. 사회적으로 꽤나 저명하고 끊임없이 저술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에게 관심이 있는 이라면 혹은 적어도 페미니스트에 관심이 있다면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서민은, 남자 페미니스트다. 그가 지난 11월 9일, 서울도서관에서 열린 인문 독서·문화 프로그램 <우리 시대의 페미니즘> 릴레이 강연의 첫 번째 강사로 시민들을 만났다. 지난 9월 출간한 저서 『여혐, 여자가 뭘 어쨌길래』가 주제 도서로 소개됐다. 해당 도서 마지막 장에 소개된 ‘같은 여자’ 네티즌의 고백이 꽤 익숙하다. “전 여자인데도 페미니스트가 싫어요” 서민 교수의 강의를 함께 들어본다면, 우리는 적어도 페미니즘을 이해하게 될까?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 인식에 대하여

저는 사람들이 외모 때문에 기생충을 미워한다고 생각해요. 저와 기생충을 동일시하기도 했고요. 이런 점이 억울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야심차게 소설책을 출간했었죠. 제 흑역사가 될지도 모르고요. 당시 출판사에서 항의 편지까지 몇 통 받은 끝에 지옥훈련을 방불케 했던 지난 10여년의 노력을 하게 됐고, 저는 경향신문 칼럼니스트가 됐어요. 제가 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요.

저는 이게 다 제 노력 끝에 이루어진 것 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제가 ‘남자’인 것이 큰 영향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남성의 성공은 노력과 어느 정도 비례합니다. 그러나 여성은 운이 많이 작용하죠. 좋은 남편, 좋은 시댁, 여기에 미모가 있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여성의 성공조건인 것 같아요.

가령, 유명 남성 축구선수는 여드름 피부에 그리 뛰어난 외모를 가진 편이 아닌데도 인간적이라서 좋다고 칭찬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훈남·추남 논쟁에서 훈남이라는 반응이 63%를 차지할 정도로요. 반면 유능한 여성 골프선수는 메이저 대회 3연패에 세계 챔피언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워도 ‘얼굴도 못생겼는데 뚱뚱하다’라거나 ‘살 좀 빼라’는 댓글이 심심찮게 달려요. 또 다른 여성 골퍼는 실력은 좋으나 외모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국내 스폰서에게 성형수술을 권유받기도 했고요. 운동선수도 예쁜 여성을 선호하면서 실력이 좋지 않으면 그걸로 또 욕하는 댓글들이 달리죠. ‘성형이나 외모 가꾸기에 치중하지 말고 실력이나 키워라’, ‘니들이 연예인이냐’와 같은 댓글들이요. 실력이 좋아도 외모가 떨어지면 못생겼다고 욕하고, 예뻐도 경기에서 실수하면 운동 못한다고 욕하고. 뭘 해도 욕을 먹는 시대입니다. 방송에 출연하는 여성 패널들도 대부분 외모가 뛰어나요. 여성들은 실력만큼이나 외모도 뛰어나야 전문가로서 방송에 출연 하는가 봅니다.

나이 차별은 어떤가요? 스펙은 좋은데 나이가 많은 여성 변호사가 결혼 정보회사에 문의를 하니 최하등급을 받기도 합니다. 또, 결혼한 여성이 박사과정에 진학하면 남성이라면 하지 않을 고민들을 하기 시작해요. 실험실 약품 때문에 임신을 못하는 것이 아닐까, 박사과정에 진학하면 남편의 기가 죽지 않을까, 남편이 버는 돈을 아내의 박사학위 과정에 쏟아 부으면 시댁에서 뭐라고 하지 않을까. 박사학위 과정 때문에 집안 행사에 참석 못하면 어떡하지? 여성들은 자주 이런 문제에 부딪혀요. 박사학위를 취득한다고 하더라도 바로 교수가 되기는 어렵죠. 1년에 10편 이상의 논문을 썼던 여성이 교수 지원을 할 때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여성 교수는 받지 않는다’는 주임교수의 발언을 공공연하게 들었던 시기가 불과 1990년대예요. 남자는 아내 덕분에 성공한다는 말도 있는데, 여자에게는 아내가 없네요?

 

군사독재가 지배하던 시절, 거리로 나와 민주화를 외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군사정권은 전투경찰을 동원해 그들을 막았습니다. (중략) 거기에 맞서기 위해 시위대는 돌과 화염병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시위의 대의는 좋지만, 폭력은 옳지 않아.” 이 세상에서 저절로 얻어지는 권리는 없고, 약자일수록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면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습니다.

- 『여혐, 여자가 뭘 어쨌길래』 5장 「페미니즘이 더 필요해」 中에서

혐오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시대가 달라졌어요. 여성들이 성폭행이나 직장 내 승진불이익 등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한 건데요. 성범죄에 대해서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에 남성들은 위기감을 느끼게 되죠. 여혐(여성혐오)을 하는 이유가 약자를 공격해 스트레스를 풀자는 의도도 있지만,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여성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한 거라고 생각해요. 남성들은 여성들이 말하기를 그만두고 옛날처럼 ‘여자가 할 일’을 하길 바라는 것 같다고 할까요?

그렇다면 남성들은 어떻게 여성들의 입을 막고 있을까요? 남성은 여성보다 인터넷 댓글을 많이 달고 있어요. 한 포털 사이트가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거의 모든 댓글의 70%이상을 남성들이 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낙태죄 폐지 위헌여부’에 대한 논의에서는 남성들의 의견이 68%를 차지합니다. 사실 낙태죄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예민하게 반응해야 할 문제인데도 말이죠. 낙태죄로 처벌받는 사람은 의사와 해당 여성이니까요.

EBS 프로그램 <까칠남녀>를 아시나요? 제가 출연했는데, 처음에는 여성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심야 방영임에도 불구하고 댓글이 엄청나게 올라와요. 대부분 프로그램과 여성을 욕하는 항의 댓글입니다. 가끔 여성들을 옹호하는 댓글이 올라오면 집단 린치를 가하는 댓글이 엄청나게 올라오는 상황이 벌어져요.

도발하는 여성들은 생각보다 많아요. 그럼 이제 남자들은 ‘조작’을 하게 됩니다. 그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빵이 없으면 브리오쉬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 실제로 그녀가 하지 않았는데도 한 것처럼 매도당했다는 것을 아시나요?

최근 이러한 남성들은 인터넷에서 마치 여성이 글을 쓴 것처럼 서두에 신분을 밝히고 군인을 비하하는 글을 쓰는 조작을 감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온라인상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글을 쓸 때 본인이 글을 쓰고 답글을 다는 경우도 허다하고요. 한 유명 치킨회사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터졌을 때도 남성들은 ‘상대 여성이 꽃뱀일 가능성이 있다’, ‘더 두고 봐야 한다’는 등의 댓글을 많이 썼어요. 이런 것을 2차 가해라고 하는 겁니다. 남성들이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욕하는 것은 자신들이 잠재적 가해자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물론 무고한 경우가 있지만, 무고는 전체 사건의 2%밖에 되지 않거든요. 이걸 두고 남성들은 모든 여성을 꽃뱀으로 몰고 가는 거예요.

여성혐오를 일삼는 남성들을 미러링(잘못을 저지르는 자에게 거울을 갖다 대서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 인식시키고 개선시키는 행위라는 의미의 신조어)의 형태로 공격한 메갈리아가 우리 사회에 남긴 후유증은 굉장히 컸습니다. ‘김치녀’라는 말을 반박하기 위해 ‘한남충’이라는 단어를 만들자 남성들은 당황하고 분노합니다. 수준 낮은 방식으로 여성을 편드는 단체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하죠. ‘시사인’에서 메갈리아에 대한 긍정적인 기사를 내보냈다가 절독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고, 정의당이 메갈리아를 옹호했다가 5천여 명이 탈당하는 사태가 벌어졌어요. 이처럼 메갈리아를 편들면 그게 누구든 욕하는 풍토는 대단히 광적이고 기이한 현상이에요. 현재 메갈리아는 공식 사이트가 없어졌어도 사상을 위한 도구로는 아직 남아있어요. 대화하다가 말이 막혔을 때 ‘너 메갈이야’라고 한 마디 던지면 모든 것이 종료되는 거죠. 여기에 침묵하는 게 너무 불편했습니다.

 

남자 페미니스트의 출현, 일반성을 바라며

서른 살까지 제가 가장 좋아했던 것이 프로야구였어요. 당연히 이성에도 관심이 있었죠. 그러나 성평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혹자는 제가 남자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여자들이 잘해줘서 페미니스트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랬다면 어린 시절이 행복했을 거예요. 어릴 땐 남녀 모두 저를 따돌렸기 때문에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웃음) 당시 저는 일반 남성들처럼 여자는 남성의 부수적인 부분이고 남성이 모든 것을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형이나 공주처럼 모셔놓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 덕분에 성평등에 대해 눈을 뜨게 됐어요. 강 교수의 관련 저서를 읽고서였는데요. 강 교수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제게 바이블이었을 만큼 큰 영향을 미쳤고, 강 교수는 저의 멘토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여성이 굉장히 힘든 사회다’라는 그의 말을 곱씹으며 세상을 바라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그때부터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여성학자 정희진 씨의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책은 제게 혁명과도 같았어요.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남해가 제주에서 보면 북해다’였어요. 이렇게 일상적인 단어에서부터 남성중심적인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이런 책을 읽으며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하는 동안 인터넷에서 여혐 현상은 점점 심화됐어요. 남성들이 ‘김치녀’, ‘맘충’이라는 표현을 일반화시키더라고요. 여성들이 그에 반박하는 글을 쓰면 바로 ‘쌍욕’이 날라오니 지레 포기하고 침묵하게 되고요.

한 팟캐스트로부터 메갈리아 편에 나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고민 끝에 해당 팟캐스트에 출연해 제 의견을 솔직하게 다 말했죠. 당연히 그 후부터 남성 안티가 많이 생겼지만 저는 <여성신문>에 원고료를 받지 않고 글을 쓰겠다고 자청해 1년 동안 연재를 했습니다. ‘일간베스트’와 ‘오늘의유머’ 두 곳에서 저를 공격하더라고요. 정치 성향이 완전 반대임에도 불구하고 저를 욕하면서 하나로 화합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신기했어요. 저는 악플을 보면 오히려 짜릿합니다.

차별 당한 경험 없이 이론만으로는 페미니스트가 되기 어려워요. 여성들은 책을 읽지 않더라도 직간접적으로 차별을 경험했기 때문에 페미니스트에 대해 훨씬 더 이해하기 쉬운 거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에 대한 의견을 남성인 제게 묻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왜일까요? 아직까지 사회 권력이 남성에게 있기 때문에 남성의 입을 통해서 듣는 것을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인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인종차별에 백인이 동참하면 파급효과가 더 크듯이 성차별에도 남성이 뛰어들면 더 긍정적인 효과가 생깁니다. 저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이에요.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남성이지만 저처럼 유명인이 아닐 경우에는 혼자 활동하지 말고 다른 친구들과 연대하세요.(웃음) 남성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오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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