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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 번, 재미있어 볼까요
우리 한 번, 재미있어 볼까요
  • 최유정 에디터
  • 승인 2018.0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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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소설가·소농小農으로 사는 조두진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있다. 대단한 재력가이거나 뛰어난 외모를 지녔거나 어떤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는 실력자로 인정받지 않았더라도 반짝, 빛이 나는 사람. 사는 모습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는데, 사실 별스러울 게 없는데도 그런 사람. 아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나이나 직업, 살아가는 환경에 상관없이 심장이 두근거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의 옆이라면 어쩐지 우리 또한 반짝거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마법, 아무래도 일어난 것 같다. 기자라는데 이미 등단한 현업 소설가이며 대구도시농부학교 교감선생님이라고 한다. 정체가 뭡니까? “저요? 조두진이라고 합니다”

 

 

기자라면서, 왜 농사 얘기에 그리 눈빛이 반짝입니까?
컵 안에 물을 담아 무심코 창가에 두었는데, 이틀 새 꽁꽁 얼음이 된 지 얼마 후였다. 어느 지역은 영하 10도라고 하고, 어딘 영하 15도는 족히 되는 것 같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던 일주일의 끝 무렵, 갑작스레 온화한 공기가 내려앉은 대구광역시를 찾았다. 무려 개교 100주년 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는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옛 대구농고)는 아마도 백 번을 족히 넘겼을 겨울 속에서 여전히 따스한 땅을 품고 학생에게 학습의 터전을, 주민에게 걸음의 공간을 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대구도시농부학교의 다섯 번째 한 해를 마치고 개운한 얼굴을 한 조두진 ‘교감 선생님’이 있었다.
“오늘 하루 딱 따뜻하네예? 오느라 욕보셨지요?”
2013년에 처음 문을 연 대구도시농부학교는 대구매일신문과 대구시교육청이 협약해 진행 중인 주민 대상 텃밭 농사 참여 프로그램이다. 개인적으로 텃밭 농사 경력 10년이 넘은 조두진 기자가 교감을 맡아 매년 새롭게 만나는 주민들에게 농사의 기초 지식 등을 전수하고 있다. 2월에 선착순 신청을 받아 총 100명을 선발한 뒤 각각 10평형 가량의 땅을 분양해 자율적인 농사를 짓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되도록 화학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농법을 권장하고 있어 채소 모양은 제 각각에, 갖가지 벌레를 퇴치하기 위한 자구책이 마련되는 통에 늘 시끌벅적한 재미가 있어 주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3월부터 5월까지는 조 기자를 비롯해 비록 ‘프로 농사꾼’은 아닐지라도 오히려 프로 농사꾼이 아니기에 알 수 있는 텃밭 농사만의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이들이 강사로 나서는 ‘텃밭 농사 맞춤형 강의’도 진행된다.
“농약 잔뜩 뿌리모 깨끗하게 자랍니다. 똑같은 크기로, 예, 잘 자라지요. 그란데, 그래 농사지어 묵을라카모 뭐할라꼬 텃밭에서 농사합니까? 사 묵지요. 제가 30대 후반부터 농사에 재미가 생겨서예, 억수로 (노력) 했습니다. 트랙터까지 투입해 봤지요. 농사고, 소설 쓰는 거고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봅니다. 그래 『텃밭 가꾸기 대백과』도 안 냈습니까? 그동안 터득한 노하우, 도시농부학교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필요할 때마다 들춰 보는 책 하라꼬요. 뭐든 한 번 빠지면 확 몰입하는 스타일이거든예? 기자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 대구도시농부학교의 시작부터 요즘 진행되는 이야기까지, 아주 재미있는 장난감을 새로 쥔 듯 한 아이의 표정을 한 채 들려주던 그가 어느새 전문 농업인인지 헷갈리던 차에 들리던 한 마디. 그는 기자였다. 현재 대구매일신문에서 문화부장으로 있는 조 기자는 물론 겪어 내야 하는 데스크의 일이지만 사실 평기자로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던 때가 더 좋았다고 말한다. 더 ‘맑은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소명으로 기사를 쓰는 일이 무엇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쓰고 농사를 하는 것이라고도 말하는 조두진 기자. 그에게는 소설가와 농부의 일 또한 기자가 갖는 소명과 다르지 않다.

 

농부라면서, 그렇게 막 퍼 줘도 된다고요?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아들이지만, 농사 한 번 참 잘 짓는 농사꾼의 아들이지만 그가 처음부터 농사에 재미를 붙인 것은 아니었다. 일평생 농사를 잘 짓는 것이 꿈이라는 아버지의 삶이 너무 소박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타고난 기질이 있었는지 아버지의 아들은 30대 후반에 접어들자 자연스럽게 아파트 단지 뒤편 텃밭들에 눈길이 갔다고 한다.
“새로 만든 단지 뒤 산에 어르신들이 텃밭을 일구고 계셨는데, 어느 날 그게 참 재미있어 보였습니다. 예. 갑자기 그라데요? 그 길로 슬슬 손길이 가더니. 집안 기질 아니겠습니까? 처음엔 농법에 엄청시레 빠졌습니다. 천연농약도 만들어 보고, 호미 하나로만 농사짓는 것도 도전해 보고요. 좋은 농업 관련 책을 수십 번씩 반복해서 읽었지요. 그래 10년 정도 되니까, 좋은 기술 익혀가 농사짓는 것 자체에 대한 재미보다 내 주변 친구들한테 눈길이 갔지요. 억수로 나눠 줘요. 친구들은 좋다고, 고맙다고 하지만 항상 그랍니다. 내가 더 고맙다꼬.”
조두진 기자가 수확하는 대부분 작물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돌아간다. 고구마, 감자, 무 등 무엇이든 수확하는 날은 친구들의 모임이 꾸려 진다. 당연히 막걸리는 빠질 수 없다. 누군가는 농부 친구가 준 싱싱한 무 덕분에 난생 처음 김치를 담가 보기도 했고, 누군가는 친구 따라 똑같은 소농小農이 되었다. 김장철이 끝나고 무청을 잘라 깨끗하게 말린 조기자 표 시래기는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수확물이다. 찬바람을 너무 많이 맞거나 먼지에 그대로 노출돼 노랗게 변색되는 시래기가 일반적인데 갖가지 노하우로 무청의 초록을 그대로 말려낸 조 기자의 시래기는 보는 즐거움까지 선사한다는 ‘상품평’이 줄을 잇는다.
“좋지요. 제가 이래 열심히 농사지어가 이기를(작물을) 판다 하모, 값을 얼마나 받아야 할지부터 온통 고민스럽지 않겠습니까? 마음도 헛헛하고요. 그기 아니라 다 주변에 나눠 줄라꼬 하니까 더 좋은깁니다. 요 시래기도 있지예. 요래 종이로 예쁘게 싸가 주모, 꽃다발 안 같습니까?”
이렇듯 ‘막 퍼 주는’ 소농 조 기자의 책이라 『소농의 공부』에는 그럴싸한, 효과적인 농사의 비법이 아니라 지인들과 나누는 기쁨에 대한 내용이 가득 차 있다. 15층짜리 아파트 한 동에서 일어난 ‘상추의 기적’부터 스스로 텃밭 농사의 비법을 개척해 가고 있는 친구들이 이야기까지 우리는 이 책으로 하여금 에세이의 편안함과 흥미로운 문화 섹션의 기사 한 편을 읽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다. 조 기자는 이러한 변화를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서 얻는 행복’이라고 일컫는다.
“TV 앞에 앉아서 남이 만들어 낸 오락 프로그램 보면서 웃는 것도 하나의 소비인데요. 스스로 재미있는 걸 찾아 하는 게 예전 어르신들이 하던 전통적인 행복 아닌가 합니다. 옛날의 우리들은 모두가 농사꾼이자 예술인 아니었습니까? 현대 생활을 하는데 그거 다 하자는 거 아닙니다. 5~10%정도만 ‘쓸데없는 일’ 좀 하믄서 재미를 찾자, 이기지요.”

 

조두진 기자가 직접 말리고 있던 무 시래기
지난해 여름, 도시농부학교에서 재배했던 파와 상추
지난해 여름, 도시농부학교에서 재배했던 파와 상추

 

소설가라면서, 글은 언제 쓰나요?
조두진 기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문득 생각나는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이 사람, 작가 아니던가?’
조두진 작가라고 해야겠다. 포털 사이트에는 분명 기자도, 농부도 아닌 ‘소설가’로 소개되는 그는 분명 무려 10권이 넘는 책을 낸 현업 작가이다. 2005년 제10회 한겨레문학상으로 등단해 『도모유키』, 『결혼면허』, 『조선선비 곽주의 부부싸움』 등 역사적 소재는 물론 우리 사회의 단면에 대해 생각해볼 법한 내용을 담은 굵직한 소설을 여러 권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멋쩍게 웃었다.
“말씀 드린 것처럼 한 쪽에 몰두하는 스타일이라 사실 병행은 잘 못합니다. 농사, 소설에 대해서는 리듬이 있지요. 신문사 일이야 제 직업 아입니까? 늘 열심히 해야 하고요. (웃음) 늘 작품 구상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다. 다른 소설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래가(그렇게 해야) 책이 나오는 건 아니거든요. 이야깃거리가 생기모 생각해야 할 키워드를 간략히 노트에 적고, 그 키워드를 단계별로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제가 몇 해 전부터 운전을 거의 안 하거든요? 버스를 자주 탑니다. 버스 안에서 머릿속이 계속 돌아가지요. 하나의 키워드가 정리되면 그 다음,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그렇게 단계가 바뀌면서 플롯을 바꾸고, 스토리 뼈대를 만들어 가지요.”
텃밭 농사에 대한 이야기에는 줄곧 웃음을 머금었던 그가 짐짓 무거워졌다. 일상 생활을 하며 노트와 머릿속으로 정리한 플롯이 정해지면 한 순간 300장의 원고를 써 내려 간다고 한다. 그렇게 실제 타이핑 작업에 소요하는 시간은 2~3주 내외. 이후 교정 작업을 하며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추가 취재와 자료 수집을 진행하며 원고를 완성해 나간다.
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를 거의 준비했다고 생각이 들었어도 막상 원고 작업에 들어가면 2~3배의 자료가 더 필요하기 때문에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한 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직업상 습관’ 덕분에 원고 분량 맞추는 데는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무엇보다 하나의 사실을 확인했다고 하더라도 여러 갈래의 ‘팩트 체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글에 담지 않는다는 신념이 있다.
“인이 박힌 습관 아니겠습니까? 한 사람한테만 들은 이야기, 자료 하나에서만 읽은 이야기는 책에 못 담습니다. 문장도 되도록 담백하게 하고요. 직업병 같습니다.”


거참 … 부럽습니다
이쯤 되니 괜스레 부러운 마음이 든다. 기자도, 소설가도, 농부도 누군가에겐 단 하나의 꿈일 수 있고 그래서 더욱 이루기 어려운 꿈일 수도 있는데 그는 세 가지 모두를 이뤄 냈으니 말이다.
“소설은 물론, 쓰고 싶다고 모두 쓰기는 어려운 게 맞아요. 업으로 삼아야 하는 농사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죠. 당장 수익이 나야 하는데 우째 친구들한테 다 나눠 주겠습니까? 일단, 할 수 있는 걸 하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소설가가 될 수 있냐며 부모님을 대동해 자문을 구하러 오는 학생에게 조두진 작가는 “웬만하면 다른 직업을 가져 본 후에 글 쓰는 일을 하라”고 답한다. 기자로 살아오다 보니 취재만으로는 한 분야의 깊은 속내를 알 수 없다는 걸 깨달았던 이유다. 만약 직접 체험해 보지 않은 분야에 대한 소설을, 취재만으로 풀어내야 한다면 그 깊이와 맛이 분명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어려서부터 글 쓰는 일만으로 업을 삼자고 확정하기 보다는 어느 한 분야에라도 직업을 가져 사회 전반에 대한 경험을 해 본 후 쓰는 글은 다를 것이라고, 조 기자는 말한다. 농사 또한 마찬가지다. 농사의 매력에 빠진 마음만으로 당장 땅을 사러 다니려는, 내년 봄에라도 땅을 살 기세의 사람들에게도 일단 농지를 임대해 텃밭 농사 규모로 몇 해 경험을 해 본 이후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조언을 잊지 않는다.
“우리는 늘 직선의 삶을 살지요. 항상 성과를 내면서 걸어가야 하는 삶입니다. 어제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만 도태되지 않으니까요. 농사는 어떻습니까? 매번 원형으로 돕니다. 그렇다꼬 지난해 얻었던 무청의 신선함이 올해는 지루할까요? 절대 아닙니다. 똑같이 신선하고, 똑같이 기쁩니다. 쪼매, 인생의 10% 정도는요. 그래도 되지 않겠습니까?”

 

 

소농의 공부

조두진 지음 | 유유 | 2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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