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01-08 18:44 (월)
그대 지금 생각합니까?
그대 지금 생각합니까?
  • 최유정
  • 승인 2018.0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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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실에서 폭발하는 철학

“철학? 그거 들여다 볼 시간이 어딨어? 먹고 사는 게 바빠 죽겠구만”이라는 말을 해본 적이 있는가. 도대체 왜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사과나무를 심고 있겠다고 했는지, 궁금한 적이 있는가. ‘철학 정도’ 공부하고, 철학에 대해 고민할 정도라면 아마도 하릴없이 자리에 누워 뜬구름만 잡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 그런데 사과나무 심겠다던 스피노자도 노동을 했고, 우리에게 『변신』이라는 참으로 철학적인 소설을 남긴 프란츠 카프카도 직장인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아마도 철학에 대한 우리의 터부는 게으름의 발로인지 모르겠다.
현실에서 묻고, 씹고, 나누는 내 인생에 ‘도움 되는’ 학문이 바로 철학이라고 부르짖는 팟캐스트 속 그들이 튀어나왔다. 책으로, 그림으로 바로 당신 앞에.

 

김준산 작가

 

팟캐스트, 두 철수
‘두 남자의 철학 수다(두 철수)’ 100회를 맞았다
김준산 안녕하세요? 두 철수 진행하는 메뚝씨 김준산입니다.
떨들 저희(청년 셋)는 글 쓰고, 그림 그리는 ‘떨거지들’(떨들)입니다. 글 쓰는 떨1(원) 이겨레, 만화 그리는 떨2(투) 남도현, 그림 그리는 떨3(쓰리) 조하나입니다. 이외에도 현재 벨기에 루벤대학교에서 공부하는 ‘외떨’이 있고요, 메뚝씨와 함께 두 철수를 진행하고 있는 똥팔씨 김형섭은 지금 춘천에 새로 짓고 있는 집 때문에 함께 자리하지 못했습니다.
김준산 지금껏 350만 여 명의 청취자들이 두 철수를 들었어요. 하루에 1만~2만여 건 사이고요. 보통은 직장, 생활공간에서 어려움을 겪던 분들이 철학의 유용함을 눈치 채기 시작하면서 듣고 계세요. 현대 철학에 대해 ‘횡적인 백과사전’을 만들고 있습니다. 준비한 목차가 모두 끝나면 역사를 가져와 종縱으로 시작하지 않을까 해요. 100회 주제는 리투아니아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입니다.
팟캐스트를 시작한 이유는, 철학과 현실이라는 두 극단을 서로에게 녹이기 위함이었어요. 철학이라는 아주 세련된, 명품 같은 극단과 우리들이 겪는 생활이라는 질퍽질퍽한 극단이 하나 있는데요. 원래 이 두 세계는 하나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한 쪽은 먼지가 안 묻게 됐고, 한 쪽은 먼지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됐죠. 그러다 보니 항상 생활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속에 오늘을 견디는 시간의 반복이 일어나게 됐어요. 철학이 있는 곳은 먼지가 없다 보니 그곳에 있는, 그들만의 닫힌 리그가 됐고요. 그 교류가 1990년대에 여러 번 시도됐는데 시대에 맞추지 못했던 것 같아요. 당초 취지와 달리 심각해졌거나 섣부른 공동체가 실험되고 실패하길 반복했습니다. 아니면 노동 운동과 만나서 또 실패했고요. 생활에 섞은 어떤 공동체가 필요하고 그 생활을 절실하게 섞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모였습니다. 이런 생활에 녹여낸 철학을 풀어내면 질퍽한 삶에 작은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철학의 지위를 지하 땅굴까지 떨어뜨리길 바랐습니다. 지금 철학이 있는 곳은 우리 현실과는 달리 너무 밝기만 해요. 범접할 수 없는 곳에 있는 거죠. 먼지 묻은 세계의 사람들에게 먼지의 의미에 대해 다르게 사고하는 걸 전해주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저도 철학을 통해 일어났으니 모든 사람들이 삶에서 철학으로 하여금 일어날 수 있어요. 자기계발, 성공 신화 말고 나 자신이 다르게 사는 삶의 방식으로 말이죠. 몇 년 동안 세밀화를 그리며 손가락이 부러져도 좋은 방식, 한두 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끈질기게 밀고 나가는 힘으로요. 이런 꿈들이 있고, 그것을 실행하는 방편입니다. 팟캐스트와 우리가 함께 살며 작업하는 방식이요.


“철학이 당신의 인생에 파동을 주고 있나요?”라는 말, 인상 깊다
김준산 제 생활에도 그 말을 실천하고 있어야 하죠. 보통은 분리돼 있으니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 그 사람의 생활이 분리돼 있습니다. 저는 그걸 역겹다고까지 표현해요. 아이들을 사례로 많이 드는데요. 이미지가 화려한 사람들은 그 자녀들을 별로 존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자신의 부정적 욕망을 채우는 데 아이들을 도구로 쓰거나 많은 시간을 섞지 않는 건데요. 본인이 변하지 않았는데 인생이 어떻고, 세계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 건 가식이라고 봐요. 제가 속한 생활에서 제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 저 또한 변화하고요.


두 철수가 수다 떠는 철학자들, 어떻게 선정하나
김준산 사실 이미 다 선정돼 있어요. 33명가량인데요. 횡적, 공시적으로 현대철학만 다루고 있어요. 예전에 1인 출판사로부터 집필 의뢰가 와서 썼던 책이 있었는데요. 당시 출판사가 망하면서 쓰던 원고가 세상 빛을 못 보게 됐어요. 쓰던 원고를 버리기 싫어서 출판 여부와 관계없이 계속 썼고, 현대철학자 33명가량에 대한 정리 내용이 담긴 원고가 됐습니다. 이후에도 매일 쓰고, 고치고, 쓰고를 반복했죠. 축복의 글쓰기 시간을 보냈어요. 이후 두 철수를 시작하기 전에 한 시민 강좌를 진행할 일이 있었는데, 강좌를 준비하면서 내용을 더 늘려 42명이 됐어요. 그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본래 철학 공부를 동양에서 출발했어요. 자연스럽게 서양으로 넘어갔고요. 두 철수에서는 서양 현대철학을 다루다 보니 동양에 대한 요구가 있더라고요. 갓 쓰고 잘난 척하며 말하는 철학이 아니라 ‘김준산이 말하는 논어’를 들어보고 싶다는 이야기였어요. 물론 저는, 동양은 철학이 아니라 사상이라고 봐요. 동양 사상, 서양 사상이 있는데 서양 사상 중에 철학이 있는 거죠. 동양 사상에는 로고스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철학으로 규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동양 사상의 흐름을 이야기 해볼까?’ 하는 생각은 갖고 있어요. 전후의 현대철학은 세계에서 그리스에서만 볼 수 있는 엄청난 폭발력을 갖고 있었는데, 그 폭발력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만 들썩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우선 그걸 정리하는 게 먼저예요. 플라톤을 얘기하자니 너무 구식 같고. 들뢰즈라면 조금 신선해 보였죠. 그게 두 철수의 감각이에요. 머나먼 이야기는 어려우니 가까운 것부터 이야기 나누자는 주의입니다.
지금까지 수다 떨었던 철학자 중 가장 의외의 반응이었던 건 사르트르였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철학자라서 아주 공격적인 녹음을 했었거든요? 대체로 공격성이 짙은 방송보다 부드러운 방송의 청취율이 높았던 터라 녹음을 모두 마친 후에 조금은 후회가 되기도 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그 방송이 최고 청취율을 기록했지 뭐예요? 신기함과 동시에 ‘아! 세고 약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것으로 매력을 느끼게 하는지, 사람의 한계가 어디인지까지 얘기하는 데 상당한 매력을 느끼는 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비트겐슈타인을 좋아할 것 같은데 오히려 사르트르를 곱절로 더 좋아하더라고요.
가라타니 고진 편에서는 김훈 작가를 비판했다가 아주 많은 이메일을 받기도 했어요. (웃음) 저 또한 김훈 작가를 좋아하지만 그런 식의 글쓰기는 문학을 죽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격렬한 반응들을 보며 ‘내가 뭔가 잘못 전달한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며 무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어요. 물론 공격이라는 건 참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상승하려는 기를 쭉 내리는 쾌감으로 우리 방송이 다뤄질 땐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이외에도 블랑쇼가 참 좋은데 많이 못 들으신 것 같아서 아쉽고요, 바흐찐은 현대 생활에도 잘 맞는 주제이기 때문에 좋아요. 특히 이런 궁핍한, 소통의 부재에서는 위르겐 하버마스 보다는 바흐찐 같은 찌르는 대화 기술이 더 맞으니까요. 또한 사르트르와 블랑쇼는 남극과 북극과도 같아서 둘을 동시에 들어서 바라볼 수 있을 때 철학을 응시할 수 있어요. 사르트르의 공격력은 너무 화려하고, 무협지의 한 장면처럼 들려오는 반면 블랑쇼 같이 30년 동안 침묵하면 뭔가 심심하니까 동시에 봐야 하는 면이 있죠. 이러한 내용들이 잘 전달되길 바랐고, 다른 회차에 비해 오히려 많이 듣지 않았다고 하면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에요.

 

왼쪽부터 김준산, 남도현, 이겨레, 조하나 씨.
왼쪽부터 김준산, 남도현, 이겨레, 조하나 씨.

 


출판사, 페이퍼 르네상스

아름다운 이름이다
김준산 처음 두 철수를 만들어 진행할 때부터 페이퍼 르네상스를 기획했던 건 아니었어요. 이 친구들(떨들)의 작업은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었지만 그 작업들이 어떻게 모이는지는 모르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러다 두 철수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설득이 일어났고, 떨들도 예술과 그림을 구체적으로 하게 됐어요. 이러한 모든 상황이 자연스럽게 밀려온 겁니다. 자연스럽지만 사나운 산물들이 생겨났죠. 대충 그려서 내놓거나 하면 우린 아주 뜨거워져요. (웃음) 우리에겐 아무 것도 없으니까 실패를 용납해서는 안 돼요. 상투적인 건 안 됩니다. 단 한 사람에게도 간직하고 싶은 작품이길 항상 바랍니다. 떨들의 책과 다른 모든 작품들이 오랫동안 인식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감정계단』, 퇴계 이황의 사정칠단을 주제로 나눈 대담인가
떨1 맞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감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모르잖아요? 내가 왜 슬프고, 화가 나고, 즐거운지를 사실 모르죠. 일단 그 감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게 기본이고요. 그걸 가르쳐 주려고 선생님이자 고모부인 메뚝씨가 떨3에게 3년 정도 감정 수업을 했어요. 책은 그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떨3에게 즐거움은 어떤 것인지, 분노는 무엇인지 이론적으로 설명해주면 떨3가 그것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떨3 대담할 때는 이론적으로 설명했는데 함께 생활할 때 제가 기쁨과 즐거움을 모른다면 단순한 것조차 이게 즐거움이고, 이게 기쁨이라고 메뚝씨가 세세하게 구분해줬어요. 그걸 대담 형식으로 다시 정리해서 글을 만진 거고요.
떨1 텍스트로만 됐으면 의미가 없었을지도 몰라요. 생활과 접목되면서 배움이 있었고, 거기에서 전망을 본 게 아닌가 싶어요.

김준산 건축의 형식을 빌어요. 딱 떨어지는 비율에 표정 없는 자본주의에 대해 신랄하게 이야기 하자고 했죠. 그림에는 모두 하나의 스토리가 담겨 있어요. 그 스토리를 살려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더 절실하게 그림을 사랑해야 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했어요.
떨3 페이퍼 르네상스는 앞으로 메뚝씨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자 기획하고 있어요. 떨2의 작품도 준비 중이고요.
떨2 아, 떨3가 페이퍼 르네상스의 대표예요. (웃음)

 


SPOT INTERVIEW - 그리고 철학, 김준산의 말

철학이 어렵다기 보다 철학을 어렵게 말하는 학자들이 더 어려운 건 아닌가
맞아요. 본래 철학은 현실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해요. 철학이 현실과 멀어졌다는 건 철학이 아니라는 뜻이죠. 철학은 현실 안에 있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 현실의 아픔을 어떻게 해석하고 덜어줄지, 아픔의 의미를 미래성으로 전도시켜주는 언어로 규정하는 게 철학이거든요.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면 철학이 죽었다는 뜻이고요. 철학은 죽지 않아요. 철학 활동이란 것이 역사에서 증명된 응축된 현실이니까요. 현실이 괴롭힐 때 철학이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기다리는 일이에요. 조급하면 안 됩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현상이 너무 지긋지긋한데 이 고통이 5년 동안 지속될지, 10년 동안 지속될지 철학은 가늠해 줄 수 있어요. 막막하기만 하다면 기다림은 오직 고통뿐이 겠죠. 철학자에게 그 명석한 혜안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철학이 현실에 아주 개입해 있어야 해요.
두 번째는 철학자들이 폭발하는 거죠. 전 요즘 철학자들이 거리 현장에 나오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소크라테스는 전태일입니다. 가라타니 고진 편에서 역시 말한 내용이에요. 실제로 그랬거든요. 사르트르는 거리에 나와 기꺼이 전단지를 뿌렸는데 이러한 일들이 어느 순간부터 무관한 일이 돼버렸어요. 알랭 바디우도 노동 현장에 갔잖아요. 지금 우리 사회 유명 대학교 철학과 교수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폭발성이 떨어지는 거죠. 철학은 굉장히 매력적인데 그들이 철학의 매력을 없애고 있어요. 소위 말하는 아카데미 기득권이 갖고 있는 폐쇄성이 철학을 나쁘게 만들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가 보다 쉽게 철학으로 가는 길은 어떤 걸까요? 일단 귀가 두꺼워야 해요. 제 공부 방식이기도 하죠. 보통은 이 방법을 쓰면 좋다는 얘길 듣곤 기존 패턴을 쉽게 바꿔요. 그런데 패턴을 쉽게 바꾸면 근육이 생성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의 디딤이 불가능해져요. 어렵다고 해도 선택한 것을 밀어부쳐야 하는 이유죠. 처음 들뢰즈를 선택했다면 일단 들뢰즈를 계속 공부해 나가길 바라요. 모든 철학자는 그 나름의 완성체예요. 그래서 그 완성체까지 접근하게 되면 세계가 총체적으로 보이죠. 계속해서 그 철학자의 관점에서 사고하고, 철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철학자의 말투를 따라하고요. 그러다 보면 그는 나에게 이야기하죠. ‘사르트르로 넘어가라’ (웃음)


철학을 공부하는 일이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나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양면성을 지닐 수밖에 없어요. 그걸 최소화시키는 게 가장 중요할 수 있죠. 껍질을 쓸 수밖에 없지만 그 껍질이 내가 알고 쓰는 껍질인 것과 억지로 호명돼 쓰는 껍질인 것은 달라요. 철학은 ‘내가 알고 쓰는 껍질은 내가 선택한 껍질이다’라는 것만 잡아서 쓸 수 있도록 만들어줄 수 있어요. 내면에 솔직한 게 아니라 나의 그 정념들에 솔직해질 수 있는 거죠. 예를 들어,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을 들 수 있겠네요. 교육,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실질적으로는 그 사랑을 안고 지저분한 걸 못 참아내는 이중성에 대해 상처 받을 때 니체가 저를 한 대 때렸어요. (웃음) 이후 니체는 끊임없이, 오랫동안 저를 때렸고 그걸 구체화시키면서 들뢰즈라는 철학자를 만났죠. 내가 가진 이 내면의 헝클어진, 할퀸 흔적들이 과연 내 잘못인가 혹은 시대의 잘못만인가, 나는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나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계속 찾다가 알튀세르라는 철학자에 흠뻑 빠져서 용기를 얻었어요. 그렇게 계속 거치고, 쌓이다 보니 이제는 일종의 내공이 생겨서 철학을 통해 그 이중성을 바라볼 때 조금 유연해졌어요.
하지만 철학은 내면 치유를 위한 도구는 아니에요. 내면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것이 어렵다고 묻는 게 철학이죠. 내면은 없다고 표현하는 게 현대철학에서는 맞다고 생각하고요. 내면을 이용해 자기계발을 하거나 심리치유를 하고, 때론 상품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건 철학과 달라요. 확실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안일한 사고방식이나 생활 형태에 대해 저기 더 큰 보물이 있다고 알려주는, 괴성 같은 거예요. 물론 그곳까지 가는 길이 아주 힘들지만요.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꿈을 꾸듯이 우리의 유토피아를 아주 아름다운 공원으로 만들어 내요. 알고 보면 우리를 쾌활하고 기쁘게 만든 모든 것들은 힘들었는데 말예요. 그런데 그 ‘즐거움’이란 것이 위에 있어요. 아파트를 구입하는 사람에게 돈을 모으는 건 분명 힘든 일이지만 아파트를 구입한다는 게 정말 즐거운 일이니까 돈을 모으는 거잖아요? 철학도 마찬가지예요.
철학을 알면 디자인, 배치, 건축, 세계, 사회상 모든 것들을 굉장히 유연하게 접속할 수 있어요. 구름이 지나가는 의미, 색깔, 모두 감각할 수 있도록 몸을 아주 유연하게 훈련시켜주거든요. 다만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서 내가 세속적이고 이중적으로 변할 때는 회초리를 치죠.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철학을 비춰 살면 우리 세계가 이렇게 비민주적이고 야만적으로 흘러가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에요. 대중들의 가방 속에 철학 책 한 권씩 있는 것은 없는 것보다 아주, 훨씬 낫다는 것이 절대명제 같아요.

 

하나 “그럼 이 시대에 진짜 기쁨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예요?”
“아주 가까이에 있지. 착한 악당들. 바로 아이들이야. 아이들이 웃으면 어때? 내가 기쁘니까 다른 사람들도 기뻐하는 것. 이게 진짜 기쁨이지.”

 

 

『감정계단』
김준산 글 | 조하나 일러스트 | 페이퍼 르네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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