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12-18 13:37 (화)
만들고, 기록하고, 수집하고, 교육하는
만들고, 기록하고, 수집하고, 교육하는
  • 안선정 에디터
  • 승인 2018.04.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능 인간의 출현 _ 김진섭

누구나 책을 만드는 시대가 됐다. 덕분에 읽을거리가 풍부해졌다. 역설적으로 보편성이 확장될수록 건너편 특별하다는 의미로서의 독특성은 더욱 존귀해진다. 특히 그것이 손으로 이뤄낸 산물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가치는 매기기 나름이다. 책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단단하게 증명해 낸 사람이 있다. 방식은 다양하다. 저술부터 제책製冊은 물론이요. 책과 관련된 기계와 도구를 모으는 수집가 역할까지 해냈다. 개인적 활동의 범주를 넘어 현재 전북 완주군 삼례문화예술촌에서 책공방북아트센터를 운영하며 책과 관련된 여러 사업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열정에 관한 짧은 기록이자, 책이라는 사물에 대한 인식론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한 걸음 더 들어가서는 책과 사람의 관계에 관한 의미 있는 해석이기도 하다.

사진제공 책공방북아트센터

 

100년 된 노트에다 책공방 일상을 기록해 만든 책이다
100년 된 노트에다 책공방 일상을 기록해 만든 책이다
『BOOK TOOLS』 책이 방명록으로 활용돼 새로운 책으로 재탄생했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남긴 방명록.
『BOOK TOOLS』 책이 방명록으로 활용돼 새로운 책으로 재탄생했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남긴 방명록.

 

 

 

 

 

 

 

 

 

 

 

 

 

 

처음부터 책이었다
김진섭은 패션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십 년 넘게 잡지 만드는 일을 했다. 관리자가 돼서는 기계처럼 책을 만들어냈다. 잡지만 7종, 단행본까지 하면 한 달 동안 보통 10권 넘는 결과물을 내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고된 업무에도 일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안목을 키울 기회 덕분이었다. 간접 경험이기는 하지만 매달 국내외 잡지 200여 권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전제가 ‘본 것만큼 알게 된다’라고 주장하고 싶을 만큼 흥미로운 정보가 많았다. 이와 함께 출장이나 연수 목적으로 외국을 드나들 수 있었던 것 또한 굉장한 자극이 됐다. 각양각색 잡지에서 봤던 여러 공간과 소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경험이야말로 날것의 영감 그 자체였다. 그중에서도 유럽의 책공방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자연스럽게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은 기필코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 ‘일’을 냈다. 책 잘 만드는 법을 주제로 4년에 걸쳐 취재하고 연구하며 글을 쓴 것. 자신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어서였다. IMF 여파가 채 가시지 않았던 시기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제책에 관한 책은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환영받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첫 번째 책 『책 잘 만드는 책』이 세상에 나왔다. 초판으로 4,000부를 찍는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 대부분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완판의 기쁨을 맛봤다. 정확히 가늠할 순 없어도 제책에 대한 시장과 수요가 존재한다는 걸 확인한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한 두려움이 아예 없었다면 거짓일 테다. 열이면 열사람 모두 안 될 거라고 걱정했다. 그렇지만 한번 사는 인생, 재미있게 살다 가고 싶다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던 뜨거운 마음은 2001년 책공방 개업으로 표출됐다. “책은 그 자체가 예술이다” 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고, 제책 경험을 전파해 삶의 의미를 보다 풍부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의지 담아 ‘책공방북아트센터’로 이름을 바꿨다. 할 수 있는 일을 더 늘려나갔다. 책과 관련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기획해 진행했다. 제책, 복원, 전시, 공연, 강의 등 영역도 다양하다.

 

책이라서 가능했다 
김진섭은 전북 완주군으로부터 책 마을 조성사업에 참여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거절할 생각부터 했지만, 기분은 꽤 좋았다. 지금까지의 노력과 성과에 대한 회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군수의 삼고초려에 일단 삼례로 향했다. 동참하지 않아도 좋으니 한 번만 내려와 달라는 이유를 아는 데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지어져 수탈 기지로 사용됐던 양곡 창고. 2010년 사용이 중단된 후 무관심 속에 방치됐던 탓일까. 낡고 허름했지만 100년 넘은 세월 품은 창고가 뿜어내는 아우라는 대단했다. 영혼이 살짝 비껴가는 기운을 느낄 정도였다. 공간을 보고나니 마음이 요동쳤다. 그렇게 2013년 삼례문화예술촌에 터전을 옮긴 후 책마을 만들기에 애정을 쏟았다. 예술촌에 자리한 첫해 자서전학교를 만들어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채록해 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반응이 좋아 3년을 꼬박 지속했다. 책 장인답게 기록이 곧 책이 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기도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이 100년 된 노트에 책공방의 일상을 꼼꼼하게 기록한 것. 1,000일을 맞은 지난해에는 기념 책자를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다. 예술촌을 와보고 싶은 장소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전국 각지 발품 팔아 어렵사리 구한 인쇄기를 비롯해 책과 관련한 도구와 소품을 선보였고, 제책 워크숍도 열었다. 문화행사도 벌였다. 책과 음악을 함께 즐기는 ‘책공방 북 쇼’는 회가 거듭될수록 큰 호응을 얻었다. 1년이 지났을 무렵 준비한 클래식 공연에 지역주민 
남녀노소 200여 명이 모여 경청하는 모습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예술촌은 개장 3년 만에 14만 명 넘는 관광객이 다녀갈 정도로 명소가 됐다. 지난해 군 최초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2016 지역문화대표브랜드’ 대상을 차지했고, 올해 초에는 ‘한국관광 100선’에 오르는 영예도 안았다. 이 모든 것이 책이라는 매개체가 있었기에 가능한 작은 기적이란다. 책의 물성이 다양하게 변주된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책공방이 제공하는 책에 대한 다른 색다른 접근과 경험은 자신을 발견하고 보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오롯이 나의 이야기로 채워진 책을 만들어 보는 것, 세상에 단 한 권밖에 없는 나만의 책을 제작해보는 체험을 하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희망 앞에 서 있는 나를 만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듭했기에 16년 세월 동안 ‘책’이라는 꿈을 놓지 못했다는 고백과 함께 말이다. 그랬다. 몇 해 전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쓴 몇몇 책 여기저기에서도 ‘책 학교’를 만들고 싶다 했다. 그리고 올해 3월 그 시작을 알리는 책 학교를 열었다. 지역 출판전문가 양성 과정으로 운영해 첫 번째 졸업생을 배출했다. 그리고 8~9월에 거쳐 두 번째 과정이 이뤄지고 있다. 아직은 전북지역 청년만을 대상으로 하고 입문자 과정 수준 정도지만 여기에서 그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렇다. 목표는 작지 않다. 책 학교와 북아트센터를 전 국 대도시에 하나씩 세워 책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종합해 한 문장으로 압축해보자면 “그래, 나는 책에 미쳤다” 쯤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싶다. 미치지 않고서 하기 힘든 일을 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으로 사람과 사람, 꿈과 꿈을 잇는 일을 하고 있어 그의 열정에 기름을 붓고 싶어진다. 스스로 ‘사람책’이 되어버린 김진섭의 미래에는 언제까지고 사람과 책이 함께 존재할 것이기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