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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꿈처럼, 표현은 명확하게
생각은 꿈처럼, 표현은 명확하게
  • 최유정 에디터
  • 승인 2018.0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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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작가노트’를 훔치다

 

“글을 쓰는 것보다 사실은 읽는 걸 더 좋아한다”는 시인 김상미의 말은 귀여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미 시인에게 글을 쓰는 일은 읽는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를 읽다 보면 우리가 읽고 있는 글이 과연 시인이 쓴 글인지 작가들과의 만남에 빠져 있는 시인의 독서 그 자체인지 혼 동될 정도이니 말이다.

사진제공 나무발전소

 

어떻게 열차 이름에 프란츠 카프카란 이름을 붙일 생각을 다 했을까? 카프카적인 어떤 마력이 작용해서 승객들을 죄다 바퀴벌레나 쥐, 개, 원숭이, 두더지(카 프카 소설 속 동물 주인공들)로 바꿔놓으면 어떻게 하려고.

 

책에는 저자가 사랑하고, 사랑한 작가 11명에 대한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구태의연한 말이겠지만 작가들에 대한 시인의 독서와 글이 혼연일체라고밖에는 이 감상을 표현할 길이 없다. 
내가 방금 읽고 지났던 어느 블로그의 ‘오늘 아침 단상’에 나올 법한 문장, 고3 때 수능 모의고사 언어영역 지문으로 봤던 문단, 퇴근길에 바라본 건너편 버스의 광고 속 카피. 이렇듯, 시인이 사랑한 작가들의 글이란 보통 문학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녹아든다. 자신도 모르게. 그러나 시인은 작가에 대한 뚜렷한 인식 속에 작가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그들의 사유 속을 헤엄치다시피 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이름을 딴 열차 속에서 가상 여행을 하며 카프카를 생각하고(시인은 카프카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으니 이건 진정 카프카와 함께 있는 것이 라고 ‘주장’한다), 이미 한참 전에 세상을 떠난 마르키 드 사드와 대담을 펼친다. 허무맹랑한 몽상이라고 치부해도 좋을 이 광경이 책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도 몽상 같지가 않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두루뭉술한 은유법이 아니라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로 썼기 때문이리라. 재미있는 것은 시인이 사랑한 11인의 작가들 문체 또한 그렇다. 군더더기 나 머릿속에 맴돌기만 하는 ‘어떤 말’이란 없다. 
작가들은 대개 불시에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할 수첩을 들고 다닌다. 크기와 형태는 제각각이다. 그만큼 되도록 다양한 말과 생각을 기억해 둔다. 故 박완서 작가가 “작가란 사물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고 했던 것을 곱씹어 보면 기록하는 자가 곧 작가, 작가란 곧 기록하는 자라는 걸 알 수 있다. ‘이제부터 원고를 써봐야겠다’라고 마음먹고 책상에 앉을 때부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적어 온 그들의 노트가 문장이 되고, 책이 되니 작가노트란 무릇 그 자신일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김상미 시인의 작가노트라고 하겠다. 그가 노래하는 문장들의 기원, 작품의 발원지 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사유하는 방법, 누군가를 대상으로 고민하는 방법을 모두 ‘습득’할 수 있다. 그래서 참으로 이 책과 의 만남은 시인의 작가노트를 훔친 기분을 남긴다.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

나무발전소 | 김상미 지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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