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04-13 18:12 (금)
모두, 자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모두, 자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 최유정 에디터
  • 승인 2018.0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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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박시백

“이제 그만 잊으라”는 말. “그만 하면 됐다”는 말. 
위로를 가장한 이 말을 하는 이들의 면면을 따져 보면 참 아이러니하게도, 끝내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실제 직접적 가해를 한 이, 그 가해 행동을 적극적으로 방관한 이, 심지어 피해자를 경멸하는 이. 우리는 아직, 이제 그러한 이들의 시선에서 자유롭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현실을 맞지는 못한 듯 하다. 아직은 우리에게 “그만 하면 됐다. 이제 그만 잊어 좀.”이라는 경멸 섞인 질 책이 날아드는, 또 봄이기 때문에.

 

‘각자의 자리’를 찾아주고 싶었다고 
네. 독립운동가는 물론 친일반민족행위자들까지 말이죠. 지금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주요한 세력, 흐름 같은 것들의 출발이 바로 35년 간 겪어야 했던 일제강점기였지 않았나 하는 생각 
을 해왔어요. 물론 그때의 35년이 지금 사회의 축소판이라고까지 하기는 무리가 있겠지만 상당 부분, 원류랄까요? 오늘의 정치 지형이 형성된 때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독립 운동 계열과 일제에 영합했던 세력을 잇는 세력들이 현재 우리 사회의 양측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한, 우리 사회 특수성이고요. 
국정교과서 논란이 한창일 때, 꽤 많이 회자된 광고 있죠? “나는 유관순을 모릅니다.”라고 말하는 학생의 얼굴이 가득 찬 그 화면. 고등학교 교과서에 유관순이 빠졌다는 걸 지적하려는 의도였는데요. 빠지면 어떻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중에 ‘유관순’ 이름 석 자 모른다면 의아할 정도로 알려진 인물인데 말이에요. 김구, 안중근, 윤봉길 등등의 위인들도 마찬가지고요. 문제는 ‘유관순만’ 알고 있는 현실이에요. 마치 앞서 나열한 단 몇 명의 독립운동가만이 일제에 대항해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로 기억하게 하는 현실 말입니다. 이들 말고 도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있는데요. 매국노도 마찬가지죠. 이완용이라는 이름이 나머지를 다 커버해 버리잖아요. 조금 더 확장해봐야 이광수 같은 문인들이고요. 이들 못지않게 친일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그들 방패 밑에 숨어 있는 겁니다. 더 많은 인물을 알리고 싶었고, 그들의 ‘자리’를 제대로 찾아주고 싶었어요. 
『조선왕조실록』을 그릴 때 왜 민중사에 접근하지 않고 왕조사에 접근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물론 역사를 민중사적 관점으로 이해하고 보는 건 상당히 중요한 일이지만 후손 된 입 
장에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일제강점기 역사도 마찬가지죠. 어떤 면에서는 더 중요하고요. 조선시대가 새롭다고 하더라도 그 시대 역시 시대에 맞는 요구, 대의 같은 게 있었어요. 가령 임진왜란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이아니더라도 다른 모든 때에 그러한 요구와 대의를 둘러싼 흐름이 있었던 거죠. 그때마다 당시를 살았던 이들 중 누군가는 시대와 무관하게 자신의 잘난 재주로 앞가림하며 살았겠고, 누군가는 시대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서 그에 걸맞은 일을 했어요.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나라를 위해, 이웃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평안을 뿌리치고 행했던 일에 대한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반면 그렇지 않고 철저히 영화로운 삶을 살았던 이들 역시 그에 맞는 평가를 받아야 하고요.

 

‘모두가’ 안간힘을 다 해 싸웠다는 느낌이 역력하다 
맞죠. 독립운동가들이 어쩌면 그렇게 한결 같이 훌륭한지 말입니다. 싸우다가 잡혀서 고문을 당하지만 이겨내고, 옥중에서 또한 자기주장 펴는 일을 굽히지 않음은 물론 사형대에 올라서까지 
기개가 꺾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1910년대 의병들부터 시작해 비밀 활동을 했던 의열단 등 모두가 자신의 전부를 걸었을 뿐 아니라 끝까지 의연함과 당당함을 지켰어요. 이러한 사람 들이, 이렇게나 많이 나왔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고 생각했죠.

신채호, 이회영 선생 같은 인물들은 또 얼마나 경이롭습니까? 처음에는 계몽운동가에서 시작해 독립전쟁론자로, 사회주의자로, 무정부주의자로 끊임없이 자기 신조를 발전시키고 바꿔나 
갔어요. 그런데 그것은 전향의 개념이 아니라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대한 독립’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어떤 것이 가장 올바른 일인가, 유용한 길인가 모색하는 과정에서 선택한 방향이라는 
거죠. 20대 풋풋한 청년들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40~50대에 이른 분들까지 선뜻 자신의 낡은 생각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 모습은 청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어요. 일생을 청년 으로 살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3·1 혁명’으로 명명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저는 사실 ‘확신’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함이 있는 듯 하고요. 어쨌든 지금의 ‘3·1운동’이라는 설명은 다소 밋밋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적절한 단어는 항쟁이라고 생각하고요. 전 
민족의 항쟁이잖아요? 해외에 거주하던 국민들까지 힘을 보탰으니까요. 당시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형태였고, 양상 또한 만세 시위부터 시작해 무장 투쟁까지 다양한 형식이었어요. 근 
래에 6·10 민주항쟁이나 촛불혁명 같은 것들을 제외하고 과연 우리 시대에서 그와 견줄 만한 것이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 만큼 의미에 대해 무겁게 여겨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항 
쟁과 만세운동, 혁명 등 다양한 단어를 고민하다가 결국엔 ‘혁명’이라고 명명해봤습니다. 4·19혁명 역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끌어내렸다는 정도 외에 근본적인 의미를 찾기에는 애매하잖 
아요? 그럼에도 4·19 혁명이라고 하니 3·1 혁명이라는 것 또한 맞지 않을까 하는 결론이었어요. 3·1 혁명이 가져온 것들을 따져 보니, 그로 인해 당시 사회 구성원의 의식이 한 단계 업그레 
이드됐다는 의미 또한 있었거든요. 중세 왕조시대의 봉건적 사상에서 공화주의 사상으로, 이후에 왕조를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싹 사라졌을 정도로 말예요. 전환이 일어난 거죠. 그런 의 
식의 전환까지 생각한다면 현 대한민국의 출발점을 이루고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건립을 부른 3·1 혁명이라는 명칭은 올 바르다고 생각해요.

 

갈등이란, 여전히 피하고만 싶은 사회 분위기 아닌가 
독립운동가들 간에 벌어진 갈등에 대해서도 책에 담은 부분이 있는데요. 사실 내분이야말로 더 옳은 독립 운동 방식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봤어요. 당연 
히 세력이 갈리고 그 때문에 사소한 것으로 오해를 사거나 화가 나거나 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요? 문제는 그런 내분,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독립운동 폄하로 끌어들이는 시선이죠. 예를 들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단순히 ‘사회주의자들이 그 입 
장에서 역시 독립운동을 했다’라고 말하면 그뿐인 거라고 봐요.

 

네 권이 더 나올 예정이라고 
5년을 기점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1925년에서 1945년까지 남았어요. 사실 ‘5년’이라고 나눈다는 게 다소 작위적일 수는 있겠어요. 10년을 놓고 1, 2편으로 갈까 고민도 했는데 그 
렇게 되면 1940년대는 5년만 남으니 그럴 바엔 애초부터 5년 단위로 나누자 해서 시작했던 것이라서요. 물론 무조건 5년으로 끝내고 있진 않아요. 가령 1920년대 전반기를 다루는 분량 
에서 1926년, 1927년에 걸쳐 있는 사건이 함께 나올 수도 있는 거고요. 여기에서 핵심적인 구성들은 그 5년 안에 있었던 일제 통치의 기본 맥락과 그 시기에 일제에 맞섰던 독립운동가의 투 
쟁, 민중의 투쟁, 반대로 일제에 영합한 친일부역자에 대해 기 술하려고 했던 거죠. 앞으로 나올 네 권은 1925년부터 1945년까지의 이야기겠죠? 조선공산당을 둘러싼 이야기, 파시즘 체제가 되면서 수많은 사람이 어떻게 일제와 영합해서 민족을 배반했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까지 시대적 기준과 더불어 굵직한 키워드별로 나누고 또 합해 진행될 예정입니다.

 

 

 

 

 

 

『35년』 (전3권)

비아북 | 박시백 지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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