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04-13 18:12 (금)
춤추는 글씨들
춤추는 글씨들
  • 에디터팀
  • 승인 2018.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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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부르크 춤 베츠슈타인
제공 프로네시스

 

Freiburg Buchhandlung zum Wetzstein

 

괴테, 엘리자베스 여왕, 해골, 오래 전에 출간된 작품 등 흔치 않은 것들을
진열해놓은 쇼윈도를 보면 어쩐지 타협 없는 고집스러움이 느껴진다. 

 

옛날에는 낫을 새로 벼릴 때 숫돌을 이용했다. 하지만 무디어진 날을 숫돌로 가는 모습은 비단 농부나 백정의 노 동을 묘사하는 데만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춤 베츠슈타인zum Wetzstein’이라는 지명에는 ‘숫돌처럼’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를 이름으로 내건 서점이라면 작가들이 어떤 자극을 받을까? 지역 토박이인 잉고 슐체는 2005년에 프라이부르크의 이 서점 방명록에 이렇게 적었다. “이곳 베츠슈타인에만 오면 언제나 생각이 예리해진다.” 
이런 곳에는 나름의 법칙이 있게 마련이다. 유명한 베스트셀러를 찾거나 재고 상자에서 할인 판매하는 요리책을 사려는 사람은 이 서점에 어울리지 않는다. ‘춤 베츠슈타인 1460번지 건물’에 붙어 있는 소박한 글씨들은 긴 역사를 말해줌과 동시에 1층 베츠슈타인 서점 주인장의 개성을 드러내는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붕에 난간을 두른 이 3층 건물은, 창문 세 칸이 아래위로 각각 세 개씩 프라이부르크 잘츠 거리 쪽으로 나 있다. 요란한 소용돌이 장식이나 눈에 거슬리는 광고 문구는 지나친 과장으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지 간판이 몹시 간결하다. 여름이면 차양마저 드리워지는 쇼윈도 위에 ‘책’이라고만 덩그러니 쓰여 있다. 주인 토마스 바더와 직원 여덟 명이 어떤 책을 진열해두었을지 궁금한 사람은 주저할 것 없이 서점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프라이부르크에 처음 오는 사람이라도 보기 좋게 잘 정리된 진열대를 보고 나면, 들어가 보려는 용기를 내는 데 별 망설임이 없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요란한 현수막도 잔뜩 쌓아올린 책 더미도 보이지 않지만, 시대의 대세와 타협하지 않고 냉철한 기준에 따라 책을 선정했다는 것이 한눈에 보인다. 내가 이 서점을 찾아가 (등 뒤에서는 프라이 부르크의 전형적인 전차 소음이 들리는 가운데) 쇼윈도를 들여다보고 있던 중에, 바더가 손님에게 일독을 권유하 는 소설 세 권이 눈에 들어왔다. 현대 산문의 이정표라고 할 우베 텔캄프의 『탑Der Turm』, 독일 전후 문학의 어떤 도식에도 맞지 않았지만 이제는 과거의 한자리를 차지한 두 권의 소설 알베르트 피골라이스 텔렌의 『두 얼굴의 섬Die Insel des zweiten Gesichts』 그리고 쉐플링 출판사에서 재발굴해 멋진 신판으로 발간한 울리히 베허의 『기니피그 사냥Murmeljagd』이다. 이따금 독자들은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 베르거 같은 유명 작가의 작품을 찾을 때도 있고 ‘좋아하는 책’을 전시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쇼윈도를 엔첸스 베르거 중심으로 꾸밀 때도 있다. 어쩌면 이런 방식이 긴 인터뷰를 하는 것보다 저자를 알리는 데 더 도움이 될는지도 모른다.

염가 도서를 배제하지는 않지만 인기몰이 중인 베스트셀러를 선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14일 동안 게시되는 베츠슈타인 통신에서는 정말로 읽을 만한 도서 정보를 고객에게 제공한다.
염가 도서를 배제하지는 않지만 인기몰이 중인 베스트셀러를
선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14일 동안 게시되는 베츠슈타인 통신에서는
정말로 읽을 만한 도서 정보를 고객에게 제공한다.

토마스 바더의 설명은 정곡을 찌른다. 지극히 개성적인 이런 취향이 없었다면 지금의 베츠슈타인 서점은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점이 이 건물로 들어온 때는 오래 전인 1909년이었다. 1978년에 바더는 건축 분야 편집자로 일하던 헤르베르트 플라체크와 함께 이 서점을 인수했고 1991년 플라체크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아내 수잔네와 함께 대대적인 구조 변경을 단행했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 미술 분야(조각·회화·그 래픽아트)를 추가했고, 다루는 도서의 주제를 좁혀 문학·서정시·철학·미술 분야 전문으로 자리 잡았으며, 초판본을 중심으로 소장 가치가 높은 고서를 보강했다. 바더가 고객의 모든 요구에 성실히 응하고 어떤 도서 주문이든 외면하지 않기는 해도(심지어 파시즘을 주장하는 도서까지 도), 언제나 분명히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신문의 문예란이나 비평가의 추천목록에 영향을 받을 때도 물론 많지만, 고객들은 바더의 독특한 안목과 고집을 신뢰한다. 주제의 폭보다는 깊이가 바로 베츠슈타인의 특징이다. (가죽으로 장정된) 독일 클라 시커 출판사의 책들은 언제든 준비되어 있으며 바겐바흐 출판사의 잘토 총서Salto-Reihe나 지금도 그 가치가 빛바래지 않은 마네세 전집Manesse-Bände 그리고 발터 베냐민, 마르틴 하이데거, 하이미토 폰 도데러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일부 철학 전공 학생들을 포함해서 자신이 고집하는 선정 도서에 호기심을 보이는 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바더는 벌써 20년째 베스슈타인 통신을 운영하고 있다. 자신이 손수 선정하고 만들기를 도맡아 하는 이 안내판은, 게시되는 14일 동안 중요한 신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그가 1년에 여섯 차례 선정하는 가치 있는 읽을거리를 알려주기도 한다. 바더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주목할 만한 도서를 추천하는 재주가 비상하다. 그가 지원하는 학술상에서 미술사와 철학 분야의 대학 논문이 수상을 한 것도 두 번이나 된다. 특별 한정 베츠슈타 인판을 주문 제작할 때도 있는데 (가령 크리스토프 메켈의 『금을 씻는 곳-페터 후헬의 추억Hier wird Gold gewaschen. Erinnerung an Peter Huchel』), 이런 물건은 고객을 위해 특별 판매를 한다. 바더는 특히 서정시에 일가견이 있다. 몇 년 전부터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유려한 필체로 써서 쇼윈도에 붙여놓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시를 보여줄 뿐”이라는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서점의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한 것이다. 바더의 필체로 쓰인 시는 서류 봉투에 담겨 손님에게 건네지고 있으며, 튀빙겐의 클뢰퍼 운트 마이어 출판사는 베츠슈타인-시時 달력을 제작해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염가 도서를 배제하지는 않지만 인기몰이 중인 베스트셀러를 선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14일 동안 게시되는 베츠슈타인 통신에서는 정말로 읽을 만한 도서 정보를 고객에게 제공한다.
염가 도서를 배제하지는 않지만 인기몰이 중인 베스트셀러를 선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14일 동안 게시되는 베츠슈타인 통신에서는 정말로 읽을 만한 도서 정보를 고객에게 제공한다.

 

바더는 고객의 모든 요구에 성실히 응하고 어떤 도서 주문이든 외면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분명히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주제의 폭보다는 깊이가 바로 베츠슈타인의 특징이며, 고객들은 바더의 독특한 안목과 고집을 신뢰한다.
바더는 고객의 모든 요구에 성실히 응하고
어떤 도서 주문이든 외면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분명히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주제의 폭보다는 깊이가 바로 베츠슈타인의 특징이며,
고객들은 바더의 독특한 안목과 고집을 신뢰한다.

이 서점에는 마치 개인 서재에 초대받은 것 같은 가정적인 분위기가 진 하게 배어 있으며, 천천히 훑어보다 보면 서점이 갖춘 도서의 품격에 감 탄하게 된다. 이 책들의 보고寶庫는 인도에서도 안쪽 깊숙한 곳까지 잘 보인다. 놋쇠로 만든 우아한 샹들리에 스무 개가 긴 통로를 비추는 가운데, 맨 끝에는 요한 카스파르 슈틸러가 그린 유명한 괴테 초상화의 복제판이 멋들어지게 걸려 있다. 그 옆에는 하얀 소파가 있고 그곳 나무 서가에는 저자의 서명이 담긴 도서가 빽빽이 꽂혀 있는데, 이 또한 베츠슈타인의 서점만의 특별한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우베 텔캄프의 서명이 담긴 『탑』만 600권이 팔렸다. 저자는 금요일마다 서점에 방문해서 고서 코너의 초대석에 앉아 독자를 위해 서명도 하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런 모임이 서점 주인에게도 저자에게도 인상 깊은 만남이라는 사실은, 텔캄프가 보낸 다음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베츠슈타인만한 서점이 조만간 다시 생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을 확인하려면 내가 드 레스덴으로 떠나서는 안 되겠지요.” 
텔캄프가 동료인 카를하인츠 오트에게 말한 ‘책으로 빛나는 섬’이라는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찬사를 듣는 베츠슈타인 서점은, 함부르크의 펠릭스 유트 서점(109쪽 참고)과 함께 전통에 빛나는 ‘5플러스’ 서점연합에 속한다. 5플러스는 독일에서 최초로 소개된 루이스 베글리의 『카우보이와 인디언Cowboys und Indianer』을 특별 한정판으로 간행함으로써 대단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베글리가 방명록에 남긴 기록을 보면 그도 바더의 서점에서 좋은 인상을 받은 듯하다. “분명 춤 베츠슈타인은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서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말이 그 
다지 놀랍지는 않다. 청회색 카펫이 깔린 통로를 걸으며 가벼운 삐걱거림과 실내에 잔잔히 흐르는 바로크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분위기에 젖다 보면, 여기저기서 진귀한 것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한쪽에는 오래 된 인형의 집이 있는가 하면, 또 한쪽에는 토마스 만의 사진이나 노벨상을 받은 뒤 춤을 추는 귄터 그라스의 사진도 있고, 또 다른 쪽에는 꽃다발과 월계수 그리고 두 대의 낡은 레밍턴 타자기도 보인다. 저 앞에서는 아주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숫돌’pierre à aiguiser artificielle을 10유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스웨덴의 식물학자 올로프 루드베크 주니어의 새 그림은 (토마스 바더가 우리의 ‘하늘’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천장화 같은 모습으로, 꼼꼼하게 유리 진열장에 보관한 저자의 친필 원고와 함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친필 원고 중에는 잉게보르크 바흐만과 알베르 카뮈, 카를 뢰비트의 서신 원본도 들어 있다. 
사람은 책만으로는 살 수 없다. 책을 애지중지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베츠슈타인 서점은 도서 말고 색다른 품목 또한 점점 늘리고 있다. 포도주를 간소하게 선정해서 진열하기도 했으며, 오스트리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고객이 슈타우트사社의 캔디도 갖다 놓았으면 하자 토마스 바더는 즉시 고객의 요청에 따랐다. 이 때부터 큉, 휘를리만, 볼라뇨 제품 사이로 빈Wien의 살구 잼 같은 것까지 진열되었다. 유별난 것을 원하는 사람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마마이트marmite 가 담긴 둥근 유리그릇을 찾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인기가 높지만 독일에서는 사실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인데, 지난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마마이트를 좋아하는 고객이 적어도 30명은 다녀갔다고 한다. 이 들 중 다수는 책을 좋아하는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앨 런 베넷의 『일반적이지 않는 독자The Uncommon Reader』를 추가로 구입했다. 

영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적절한 배려가 있을까? 프라이부르크에는 세 나라의 국경이 만나는 삼합점에 위치한 따뜻한 대학 도시라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특히 SC프라이부르크 팀의 성적이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축구팬에게는 오랫동안 축복의 오아시스였다. 시 당국이 오로지 상업적 목표를 추구하는 분데스리가 관련 사업에만 치중해 도시 발전 계획을 세우는 폐해도 있었지만 말이다. 문학평론가인 헬무트 뵈티거는 당시 프라이부르크 축구팀의 도약을 언급하면서, 사회적으로 ‘전진을 위한 계기’는 변두리에서 나온다는 허버트 마르쿠제의 명제를 인용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는 늘 개혁을 지향하는 토마스 바더처럼, 프라이부르크 변두리에서 독자적으로 꿋꿋이 품격 높은 서점을 이끌어가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인지도 모른다. 이토록 아름 다운 서점에서라면 안젤리카 타셴이 잡지 『키케로Cicero』에 기고한 글에서 표현한 대로, 삶의 마지막 날을 여기서 보내고 싶을 것도 같다. “정오에 나는 서점으로 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라이부르크의 베츠슈타인 서점으로. 나는 이 작은 공간에 모여 있는 인류의 위대한 정신과 교유하며 넋을 빼앗긴다.” 지상의 낙원이란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유럽의 명문 서점』 
프로네시스 | 라이너 모리츠 글 | 레토 군틀리, 아지 시몽이스 사진 | 박병화 옮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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