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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함께 성장하는 구산동도서관마을
마을과 함께 성장하는 구산동도서관마을
  • 구선아(작가, 책방 연희 대표)
  • 승인 2018.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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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책방에 도서관 사서 여러 명이 들른 적이 있다. 내가 책방만큼이나 여러 도서관을 드나드는 것을 알고는

어느 도서관이 가장 좋았나요?

물어왔다. 잠깐 고민 후에 두 개의 도서관을 꼽았고, 그중 하나가 구산동도서관마을이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구산동 주택과 빌라가 빼곡하게 들어선 골목에 자리해 처음 찾은 사람이라면

이런 곳에 도서관에 있을까?

의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역밀착형인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인근 지역주민들에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친구들과 함께 학교가 끝나고, 때론 주말에 가족과 함께 일상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들르는 곳이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여러 다가구주택을 고쳐 만들었다. 무려 여덟 채의 집터에 지어졌다. 기존의 건물과 건물 사이 새로이 건물을 지어 하나의 도서관으로 만들었지만, 이질적이지 않고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입구를 지나 도서관에 들어서면 골목과 골목이 이어진 듯하다. 마치 수평 형태의 마을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느낌이랄까. 마을의 골목을 걷다 보면 집이 있고, 중정이 있고, 마당이 있고, 또 어느 집을 만나듯이 골목을 걷다 보면 서가가 있고, 전시 공간이 있고, 책을 읽는 공간이 있다. 계단과 반지하, 구석구석에 있는 방이 새롭게 변화한 것이다. 나는 구불구불 한 동선과 구석구석 숨어서 책을 볼 수 있는 구산동도서관마을의 공간과 구성을 좋아한다.

처음 방문했을 때 주민들의 청원으로 도서관이 만들어졌다는 점과 삶의 기억과 시간이 묻어있는 집이 도서관이 되었다는 점이 놀라웠고, 구불한 동선과 구석진 공간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다시 찾은 도서관마을은 구산동에 단단히 자리 잡은 책 마을로서 그동안의 노력을 짐작케했다. 처음 갔을 때 독특한 공간과 탁 트인 중정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이번에 내 마음을 끈 건 독립출판물 서가와 만화의 숲이었다. 독립출판물 서가는 독립출판물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안내 문구를 써두어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호기심을 갖게 한다. 비록 적은 수량이지만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읽고, 대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ISBN이 없는 책이 대부분이라 일일이 책 제목과 저자, 발행일 등을 입력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기꺼이 감수해낸 것이다. 익숙한 독립출판물도, 낯선 독립출판물도 있었다. 간혹

이게 독립출판물이야? 이건 기성출판물로 봐야 하는데

생각이 드는 의아한 것도 꽂혀있었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내려놓았다. 조금 아쉽다면 일반 서가처럼 신간을 정기적으로 채우지 못해 최근에 발행된 독립출판물이 거의 없다는 것. 그래도 다양한 연령층, 여러 계층의 사람이 찾는 도서관에서 독립출판물을 소개하는 것은 책 문화의 다각화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어쩌면 도서관에서 독립출판물을 접하고 근처 독립서점으로 발길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만화의 숲은 2층부터 4층까지 꽉 찬 만화 서가로 어린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발길까지 붙잡는다. 만화는 총체적인 시각정보다. 텍스트와 그림이 뒤섞여 스토리를 전개해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의성어와 의태어로 말맛이 무언지 깨닫게 하고, 발칙한 아이디어로 머리를 말랑하게 해준다. 2층은 만화가들의 방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이 직접 그리고 쓴 만화책이 전시되어 있다. 중철로 만들어진 만화책은 <초등학생의 일상생활>, <다욧을 합시다>, <딸과의 대화>, <고양이의 말>, <백조사서의 하루>, <대단히 대단한> 등 성인 만화가 못지않은 고민으로 만들어졌다. 도서관마을에서 아이들을 모집하여 만화를 그리고, 만화책을 만들고, 웹에 연재하고, 전시하여 이렇게 사람들과 나누고 있었다. 그림 실력이 뛰어나거나 스토리가 탄탄하진 않지만, 그 상상력은 어른 못지않게 뛰어나다. 일상을 보는 시각이 어른과 다르면서도 어느 면에서는 어른과 비슷한 단어를 구사하고 비슷하게 상황을 해석하고 있었다. 또한, 만화의 숲에서는 현직 만화가를 초청하여 전문적으로 만화를 배울 수도 있다고 한다.

방 안에는 구산동 마을이 보이는 큰 창문 앞에 삼각자, 붓, 모형 자, 사인펜 등 만화를 그리고 만화책을 만드는 도구가 매달려 있고 기다란 책상이 놓여있다. 책상 앞에는 형과 동생으로 보이는 꼬마 남자아이 두 명이 나란히 앉아 발을 동동 구르며 머리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작은 손에 연필을 꼭 쥐고 노트에 무언가 열심히도 그리고 있었다. 아직 솜씨는 서툴지만 진지한 눈빛으로 칸을 채워나갔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창밖으로 보이는 현수막 속 어린이 문학 속의 판타지라는 단어와 겹쳐졌다.

, 이거 어떻게 ?

네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려

마음대로 해도 ?

그럼, 만화는 상상력으로 시작하는 거야

3층은 한국만화걸작선 서가로 꾸며졌다. 어린이, 공포, 판타지, 역사/고전, 액션/무협, 코믹/가족, 드라마, 스포츠 등으로 만화책이 구분되어 있었고, 보유하고 있는 책 수량도 대형 만화카페 못지않았다. 도서관마을에서 가장 사람이 빼곡히 앉아 있는 공간이었다. 원본을 사진이나 기타 과학 기술로 인쇄하여 원본과 똑같이 만든 영인본도 전시되어 있었다. 지금처럼 매끈한 종이에 깨끗이 인쇄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어릴 적 만화방을 들락거리며 보았던 책과 비슷해서일까. 유난히 40대 이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오래도록 영인본을 들여다보았다.

계단으로 마지막 4층에 올랐다. 4층은 국내외 그래픽 노블을 주로 볼 수 있었는데 예상보다 다양한 소재와 출판사의 책이라 놀랐다.

엄마, 나도 보고 싶어

책은 조금 커야 있어

19세 이상만 열람, 대출이 가능한 그래픽 노블 서가에서 나는 내 취향을 다시 확인했다. 『굿모닝 예루살렘』, 『콩고』, 『포르투갈』 등 도시 이름을 가진 책을 가장 먼저 펼치고 있는 나였다. 만화도 동화도 소설도 에세이도 아닌 그래픽 노블은 보다 실제의 이미지에 가깝고, 서사구조도 여느 단편소설 못지않으며 메시지가 가볍지 않은 게 많다. 잠깐 자리에 앉았다가 오래 머무르게 되는 서가다. 그리고 만화의 숲이 책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도서관에서 SF 세계를 만나기도 하고, 11월까지 목요일 밤마다 도서관에 모여 펜 드로잉을 배우고, 매주 일요일엔 만화 웹툰 교실이 열린다. 만화는 연령과 관계없이 접근하기 쉬워 지역민과 나누기 좋은 콘텐츠이기도 하지만 일상생활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좋은 도구이기도 하다.

이렇듯 십진법 분류로 가지런히 책을 꽂는 것 외에도 새로운 방법으로 책을 소개하고 있다. 만화도 그래픽 노블도 그리고 영화와 책을 엮어 소개하는 서가도 매달 주제를 바꿔 선보이는 이슈 서가도 사서의 고민이 엿보였다. 마을 도서관이 필요한 이유는 정보와 지식의 획득, 지역민 교육도 있지만 일상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더 나은 일상을 만들어나갈 기회를 도서관이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지역밀착형 도서관의 가치이며 지역밀착형 도서관에서 이렇게 만화 또는 독립출판과 같이 친해지기 좋은 책을 많이 선보이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지역주민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구산동도서관마을. 100여 개의 독서문화프로그램이 운영되고, 마을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소통하는 도서관으로서 지역주민의 삶을 함께 고민하는 도서관이 되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의 다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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