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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막한 사진 세계, 곳곳을 향해, 〈VOSTOK〉 박지수 편집장
광막한 사진 세계, 곳곳을 향해, 〈VOSTOK〉 박지수 편집장
  • 유지연 에디터
  • 승인 2017.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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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 인간은 볼 수 있는 것을 보려했고 볼 수 없는 것까지도 보려했다. 그 시각적 호기심은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행성 밖까지 향했다. 그렇게 최초로 사람을 태운 우주선은 비행에 성공했다. 지구 밖에서 처음 지구를 바라본 ‘유리 가가린’은 “지구는 푸른빛이었다”고 술회했고 그가 탑승한 우주선 ‘보스토크Vostok’는 우주 기술 발전의 가속화를 이끌었다. 뜬금없이 유인 우주선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사진 잡지 〈VOSTOK보스토크〉를 만나기 위해서다. 최초의 유인 우주선 이름을 가져온 이 잡지는 작년 11월에 출발했다. 보는 행위의 정점에 놓인 사진을 통해 시각 이미지를 다루는 새로운 잡지. 지금 〈VOSTOK〉가 보고 있는 세계의 바깥은 어떤 빛일까. 〈VOSTOK〉 박지수 편집장을 만났다.

 


 

〈VOSTOK〉 Vol.2 뉴-플레이어 리스트 p.161
〈VOSTOK〉 Vol.2 뉴-플레이어 리스트 p.161

〈VOSTOK〉 : 이륙 준비, 연료를 채우다

시작은 질문이었다. ‘왜 독자들은 사진집을 어려워할까.’ 질문은 문제의식으로 이어졌다.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 사람들이 모였다.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독자들이 볼 만한 사진집이 있을까.’

박지수 편집장은 사진집이 일반 독자가 읽어내기 어려운 책이라는 점을 전제한다. 사진작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담아내는 과정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독자의 입장을 고려해 가공을 거치기보다 한 작가의 작업 방향을 담아내기에 집중한다. 때문에 낱장의 사진을 보는 것과 달리 텍스트가 없거나 적은 한 권의 사진집이 어떤 콘텐츠를 담았는지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이 맥락에서 사진의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박 편집장은 사진에서 순수 소비자를 찾기 어렵다는 점을 꼽는다. 이를테면, 영화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다. 계속 작품들을 찾으며 좋은 소비자로 남는다. 반면, 사진을 좋아하기 시작하면 카메라를 구입해 곧바로 사진을 찍는 생산자가 된다. 사진을 찍으면 작업을 하게 되고 그 작업을 소개할 수 있는 전시나 출간에 욕구가 생긴다. 때문에 생산자의 수가 많다. 이 배경은 사진 잡지에도 반영된다. 잡지 자체보다도 생산자의 작업 게재 여부에 따라 평가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이렇게 생산자 위주의 콘텐츠가 만들어지니 독자 입장에서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을 동향을 다루는 콘텐츠나 광고성 기사가 주를 이루게 된다.

박 편집장은 한 잡지의 정체성은 그 잡지에서 기획하고 다루는 특집과 연관이 깊다고 생각한다. 잡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보여주는 부분이 특집이기 때문이다. 그 바탕에 앞선 문제의식이 접목됐다. 콘텐츠를 만들고 콘텐츠가 독자에게 수용되고 그에 상응하는 값을 지불하고 판매 수익으로 다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선순환. 〈VOSTOK〉의 시작점이다.

창간호를 준비하면서 텀블벅을 통해 독자들에게 출현을 예고했다. “기본적인 출자금이 많지 않아 제작비를 벌어야하는 입장이었다”는 솔직한 계기가 무색할 만큼 반응은 뜨거웠다. 독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VOSTOK〉의 시작을 반겼고 지지했다. 목표 펀딩에 네 배가 달하는 수치가 모였다. 자신의 성향에 맞는 콘텐츠를 후원의 개념으로 주체적으로 소비하는 텀블벅에서 호응이 컸다는 점은 여러 가지를 시사했다. 이미 독자들을 통해 한 차례 검증이 되었다는 의미였고 이후 홍보에도 효과를 봤다. 무엇보다 〈VOSTOK〉의 취지와 콘텐츠만으로 이끌어낸 반응이었다. 〈VOSTOK〉 편집 동인에게도 큰 힘이 됐다.

‘에디터가 생산하는 콘텐츠’로 구성하는 〈VOSTOK〉는 여섯 명의 편집 동인이 꾸려간다. 모두 다른 매체에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월간사진〉에서 기자를, 〈VON〉과 〈포토닷〉에서 편집장을 거친 박지수 〈VOSTOK〉 편집장을 비롯해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으로 활동 중인 김신식, 방송사의 사회부 기자로 활동 중인 김인정, 〈말과활〉, 〈사진이론학교〉의 기획위원을 맡은 김현호, 〈포토닷〉 기자 출신의 사진비평가 이기원, 〈퍼블릭 아트〉와 〈경향 아티클〉의 창간 작업에 참여한 미술 전문 기자 서정임이 〈VOSTOK〉를 매만진다. 한국 최초의 북 디자이너로 알려진 정병규가 〈VOSTOK〉의 편집인을 맡아 지지해준다. 이들의 면면에서도 알 수 있듯 시각예술과 사진 이미지에 관심이 맞닿아있는 에디터들이 모였다.

 

〈VOSTOK〉 Vol.2 뉴-플레이어 리스트 pp.156-157
〈VOSTOK〉 Vol.2 뉴-플레이어 리스트 pp.156-157

〈VOSTOK〉를 채우는 것들

〈VOSTOK〉에서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주제다. 80%의 분량을 특집 주제에 할애한다. 격월간으로 발행하지만 시의성을 가장 우선에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시의성에서 완전히 눈을 거뒀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주제를 찾는 건 아니다. 단발적인 시의성보다 하나의 쟁점에 집중해 지속 가능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VOSTOK〉 4호에서는 ‘Lit-graphy : 사진 위에 적은 것들’이라는 주제로 사진과 글의 관계를 살펴본다. 텍스트에서 영향 받은 사진과 사진에서 영향을 받은 텍스트가 이루는 상호관계와 사례를 소개한다. 3호에서는 사진 잡지에서라면 언젠가 한 번쯤은 다뤄야 할 주제를 선정했다. 무엇보다 시기적으로 맞닿아있기도 했다. ‘사진과 권력 : 빛과 그림자의 연대기’를 통해 권력과 사진이 서로 관계하는 모습을 다루고 그 다층적인 전선을 짚어본다. 2호에서는 새로운 작가군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잡지의 주요한 역할을 소화하며 ‘뉴-플레이어 리스트’를 선보였다. 사진에 관한 12개의 리스트에는 작가 열여섯 팀, 필자 세 명, 공간 세 곳, 행사 하나가 포함됐다. 창간호 주제는 ‘페미니즘 : 반격하는 여성들’이다.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유효한 쟁점인 페미니즘에 대한 과감한 시각적 접근과 풍부한 콘텐츠가 주는 반향은 적지 않았다. 2호가 발간된 후에 창간호를 재쇄하는 고무적인 상황도 불러왔다. 이처럼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는 여러 아이템이 한 권에 담긴다. 과월호의 개념이 희박해지고 특집 주제를 중심으로 독자의 수요도 영향을 미친다.

박 편집장은 〈VOSTOK〉의 강점은 에디터가 모여 콘텐츠를 구성하는 점이라고 본다. 주제와 특집을 강화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정보를 쉽게 구하는 지금의 사회에서 잡지를 읽는 독자들은 일종의 큐레이션을 원한다는 부분에 방점을 찍는다. 박 편집장은 그 형태가 특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매달 정해진 코너를 채우기 위해 빈약한 아이템 중에서 억지로 채워야 하는 프로세스가 답답했던 경험을 기억하며, 되도록 고정 꼭지를 줄이고 특집 주제에 맞춰 아이템을 구성하는 형태를 취한다. 때문에 외부에서는 〈VOSTOK〉의 시도를 대담하게 바라본다. 편집부에서 필요한 코너에 맞춰 구성의 짜임새를 갖추는 과정이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심적으로는 오히려 더 편하다는 담담한 반응이 돌아왔다.

이렇듯 〈VOSTOK〉의 구성은 특집을 중심으로 서너 꼭지 가량의 고정 코너로 구성된다. 특집 주제의 범위를 넓혀 최대한 많은 사진 작업을 모으고 직관적으로 덜어내며 선별한다. 균형을 맞추는 과정을 거치면 〈VOSTOK〉가 채워진다. 아직 신생 잡지인 만큼, 코너에 대한 고민도 이어지고 있다. 사진이 곁들어진 다양한 필진의 글을 엮은 ‘포토에세이’와 ‘칼럼’, 하나의 사진집을 여러 시각으로 이야기해보는 ‘사진집-아나토미’, 주목할 만한 전시를 대담 형식으로 소개하는 ‘전시 셔틀’, 사진이나 사진가를 다룬 영화를 통해 매체를 풍부하게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스톱-모션’, 사진과 책의 경계에서 사유를 모색하는 ‘포토 로망’이 마련되어 있다.

〈VOSTOK〉는 사진을 중심으로 현대미술과 디자인, 출판 등의 경계에서 새로운 지식과 감각을 발견해나간다. 잡지 밖에서도 외연을 확장해 나가는 다양한 활동에 시동을 걸고 있다. 소설 잡지 〈Axt〉와 콜라보 콘텐츠를 제작하고 ‘뉴-플레이어 리스트’에서 소개한 작가들과 만남을 추진한 ‘보스토크 메리고라운드’를 진행했다. 〈VOSTOK〉 발행 루틴이 안정되고 공간과 같은 여건이 마련되면 다양한 프로모션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사진 아카데미와 단행본 출간 사업도 ‘VOSTOK PRESS’를 통해 진행할 예정이다. 박 편집장은 아직 마음만큼 외부 활동을 펼치지 못하는 점을 아쉬워했다. 취향과 성향이 맞는 독자들과 꾸준히 스킨십하면서 얻는 에너지가 크기 때문이다.

 

〈VOSTOK〉 Vol.1 페미니즘 : 반격하는 여성들 p.76
〈VOSTOK〉 Vol.1 페미니즘 : 반격하는 여성들 p.76

〈VOSTOK〉가 만들어가는 프레임

카메라만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시각적 표현 매체가 있었을까. 그 연장에서 이 시대에 ‘사진의 역할’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앞뒤 없고 무책임한 질문을 던졌다. 박지수 편집장은 한참을 생각하며 신중히 말을 골랐다. ‘사진의 역할은 잘 모르겠지만, 개인에게 어떤 역할을 했다’는 답변으로 선회했다.

대학에서 흑백 사진 동아리로 활동하며 처음 사진을 만졌던 박 편집장은 기본적으로 프레임을 통해 보는 사진은 몰입도가 높은 매체라는 점에 동의했다. 암실 작업까지 필요한 흑백 사진 작업은 캄캄한 곳에서 계속 응시하는 과정이었다. 박 편집장에게 사진은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고, 그 역할이 좋다.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발걸음에는 차이가 있다. 가던 걸음을 멈추게 만들고 무언가를 보게 하고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인화하기 위해 여러 번 보는 작업. 대부분 디지털 사진을 찍는 지금의 환경에는 어울리지 않는 과정이지만, 박 편집장에게 사진은 그만큼 의식적인 행동이다.

이야기 끝에 ‘사진의 역할’에 대한 답은 다시 확장됐다. 박 편집장은 오히려 지금 사진의 역할이 점점 지워지고 있다고 보는 편이다. 이전에는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가 의식적이었다면 이제는 ‘수많은 사진 중에 선택해 온라인에 불러낸다’는 행위가 더 의식적이라고 본다. 최근에는 블랙박스처럼 24시간을 찍어두거나 뇌파를 인식해서 반응이 강할 때마다 사진을 찍는 카메라도 선보였다니, ‘사진의 역할’이랄 게 뭔지 모르겠고 고민이 깊어진다는 것.

그렇다면 사진 잡지 〈VOSTOK〉는 궁극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도 박 편집장의 뜸이 길어졌다. 그는 한때 즐겨 구독했던 영화 잡지 〈키노〉를 예로 든다. 제법 어려운 내용의 〈키노〉를 한 달 내내 읽었는데, 그 잡지에서 제공해주는 리스트를 지워가며 영화를 봤던 경험이 즐겁게 남아있다. 하나의 분야에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지 않을 때, 잡지라는 중간 매개를 통해 양질의 콘텐츠를 소개받은 경우였다.

사진은 인쇄 매체에 최적화되어 있고 콘텐츠로 구성하기에도 좋다. 무엇보다 글과도 잘 어우러지는 매력이 있다. 충분히 사진에 재미를 느낄 만큼 중간에서 가공해주는 콘텐츠가 나오지 않고 소비자들은 1차 생산자들이 만들어내는 사진 콘텐츠를 어려워한다. 사진이 자꾸만 고립되는 상황이 늘 안타까웠다. 〈VOSTOK〉를 통해 1차 생산자들은 그들대로 좋은 작업을 하며 고립감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사람들은 그 가치나 재미에 대해 알게 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 충분히 생산자와 소비자가 즐겁게 소통할 수 있다고 여겼고 언제나 그러길 바라왔다. 박 편집장에게 잡지란 사진을 제안하는 가장 좋은 형태다.

한 권의 잡지가 잘될 경우, 그 씬을 풍요롭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박 편집장은 궁극적으로는 1차 생산자들이 사용료만 지불 받고도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란다. 그렇다면 더 좋은 콘텐츠가 나오게 되고 소비자들은 그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작은 생태계가 〈VOSTOK〉를 통해서 건강하게 이뤄지길 바란다. 서로의 관계에 분명히 시너지 효과가 일어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박 편집장은, 그런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버티는 게 가장 관건일 거라고 말한다.

〈VOSTOK〉는 네 권만으로도 이미 많은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박지수 편집장은 여전히 어디로 가야할지 탐색하는 형편이라고 밝힌다. 신중히 대답을 고르며 오래 뜸을 들이고 사진과 사진 잡지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그의 머뭇거림이 미덥다. 이제 막 이륙에 성공한 〈VOSTOK〉의 궤도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 비행이 더 멀리 가기를, 그래서 더 없이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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