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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거인은 슬프지 않다
이제 거인은 슬프지 않다
  • 이나연 에디터
  • 승인 2017.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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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제공 바람의아이들

 

어린이 책 앞에 선 어른들에게

[8월호] 유년 시절 주로 어린이 전집세트와 세계명작시리즈를 섭렵했다. 배송받은 책을 거실 바닥에 펼쳐 놓으면, 방대한 양 때문에 당장이라도 지식이 샘솟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도서 세트를 주문하면 근사한 원목 책장을 함께 받을 수 있었던 점이 어른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어린이 책을 접할 기회는 줄어들었고, 그렇게 아동문학과 서먹한 채로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아동문학이나 청소년문학 앞에 서면 작아진다. 정보도 부족하거니와 어떤 작품이 좋은지 살펴볼 안목이 없기 때문이다.

 

거인이 슬픈 까닭은 집나무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고 집나무에 들어갈 수 없는 까닭은 몸집이 크기 때문이다.

‘슬픈 거인’은 클로드 퐁티의 그림책 『나의 계곡』에 등장하는 캐릭터다. ‘집나무’는 아이들의 놀이터다. 몸집이 큰 거인은 이 나무에 들어가지 못한다. 모두 들어가 뛰노는 곳에 홀로 들어갈 수 없는 거인은 슬프다. 어쩌면 몸집만큼이나 큼직한 눈에 슬픔을 담아 끔뻑거리고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거인에게, 정확히는 거인의 눈에 담긴 슬픔에 이끌렸노라고 고백한다. 프랑스 현대 비평을 전공한 저자가 아동문학에 머무르게 된 것도, 오랜 시간 어린이와 책에 대해 성찰하게 된 것도 거인과의 만남 덕분이었다. 오묘한 감정이 뒤섞인 거인의 눈이, 깊게 잠들어있던 유년시절을 깨웠기 때문이다.

 

『슬픈 거인』
최윤정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7년 5월

 

‘어린이 책을 고르는 어른들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슬픈 거인』은 어린이 책 앞에서 작아지는 어른에게 길을 알려 주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아이에게 어떤 책을 읽혀야 할지 몰라 난감한 부모에게도, 어린이 책과 친밀해지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유용한 작품이다. 국내․외 아동문학 작품을 가리지 않고 폭넓게 선정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아동문학을 만드는 작가들이 가져야 할 고민을 진지하게 공유한다. 또, 어린이를 이해해야 하는 아동문학에 상업성부터 들이미는 출판계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어른들과는 구별되는, 그 나이를 살아가는 특수한 내면세계를 다룬 문학이 필요하다. [……]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이 될지 잘 알지 못하는 상태로 막막하게 살아가는 성장기 아이들의 곁을 지키며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이 어린이·청소년문학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그들만의 내면세계를 가지고 있다. 이 세계는 아직 견고하지 않지만 정체성을 확립하며 여물어가고 있다. 그러기에 아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이들과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작품이 필요하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작품을 읽고 싶어 하는 ‘욕망’을 심는 것, 단 한 권이라도 상업성에 물들지 않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신조로 삼는다.

저마다의 내면에도 거인이 살고 있다. 이 책을 읽고 각자의 거인과 마주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불쑥 튀어나와 우리의 동심을 건드릴 이 거인의 표정이 밝다는 점이다. 저자의 유년을 깨운 거인은 슬펐지만, 이 책과 만난 우리를 깨울 거인은 더 이상 슬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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