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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민의 서울연가
이용민의 서울연가
  • 이나연 에디터
  • 승인 2017.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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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이용민

[8월호] 서울은 독특한 도시다.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화려한 도시, 관광객의 눈과 귀를 황홀하게 할 요소가 충분한 도시. 그러나 커튼을 걷듯 벗겨보면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공사로 부서지고 재개발로 흩어지는 장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의 동네들을 찾아다니며 묵묵히 카메라로 기록하는 사진가 이용민을 만났다.

 

“사진 찍는 이용민입니다.”

본인 소개를 부탁하자 이 한 마디가 돌아왔다. 어떤 수식어도 없는 간결한 답이었다. 생소할 수 있는 독자를 위해 이런저런 표현을 더할 법도 했지만, 그동안 매체 인터뷰를 한 적이 없어 기분이 이상하다는 말로 소탈하게 소개를 마쳤다. 사진가 이용민을 처음 만난 곳은 그의 블로그다. 화려하지도, 많은 팔로워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작품을 기록해 온 작업노트였다.

 

《기억할게 삼거리시장》에는 떠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맑은 날이면 빨랫줄에 피던 빨래꽃이 더 이상 피지 않는 걸 볼 때 빈 집의 쓸쓸함을 실감한다.

 

더 이상 ‘빨래꽃’이 피지 않는 곳

재개발. 이 세 글자에 일사천리로 한 동네가 사라진다. 집이 허물어지고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난다. 눈 쌓인 낡은 슬레이트 지붕, 빗물 고인 골목, 빨랫줄에 걸려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들, 행인의 뒷모습. 그의 시리즈 사진집 《LUOES | SEOUL》에는 이런 풍경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LUOES | SEOUL》는 서울의 동네들을 찍어 전자책으로 출간하는 그의 메인 프로젝트다. ‘LUOES’는 ‘SEOUL’을 거울로 바라보듯 뒤집은 단어다. 이 단어처럼 화려하고 매혹적인 서울의 이면을 프레임에 담고 싶었다. 처음부터 서울을 찍겠다고 계획한 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이 살던 동네가 도시계획에 따라 단숨에 찢어지는 모습을 보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카메라를 든 것이 여기까지 왔다. 취미로 시작한 사진이 이렇게 이어지게 될 줄 몰랐다. 아현동을 시작으로 이화동, 옥수동, 녹번동, 정릉동, 노량진동, 삼성동, 봉천동, 중계동, 상계동 등 숱한 동네를 짧게는 사계절, 길게는 수년 동안 관찰해 차곡차곡 전자책으로 엮어냈다.

 

출판은 ‘책임감’이 따르는 작업

왜 디지털출판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종이책의 수요가 적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던진다. 사진집이 잘 팔리지 않는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할 마음은 비운 지 오래다. 사진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다른 일을 병행하고 있다. 인터뷰 전에도 일을 하고 온 그는, 당장 포기하고 싶다가도 사진이 좋아 카메라를 들고 동네를 누빈다고 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거나 외국 사진 잡지를 감상한다. 트렌드나 기술, 그림을 익히기 위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다.

그는 ‘도서출판 누구나’의 대표이기도 하다. ‘도서출판 누구나’는 기획, 편집, 출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그가 혼자 책임지는 1인 출판사다. 처음에는 대형 서점의 1인 출판 서비스를 이용해 종이책과 전자책을 출간했는데, 판형이나 비용 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 자가 출판에 도전했다. 그때 만든 출판사가 ‘도서출판 누구나’다. 이름 그대로 누구나 출판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작품집을 한 권 두 권 출간할수록, 출판이 아무나 도전할 수 없는 분야임을 깨달았다. 출판 후 뒤따르는 ‘책임감’이 가장 힘들기 때문이다. 세상에 책임감이 뒤따르지 않는 일이 어디에 있을까만, 특히 창작물을 출간하는 저자에게 책임감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것이다. 책 한 권이 사회적으로 예기치 못한 파란을 일으키거나 나비효과처럼 연쇄반응을 불러온 걸 그동안 우리는 심심치 않게 봐 오지 않았는가. 독자의 평가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출판 과정에서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런 부분에서 홀로 작업하고 책임질 수 있는 독립출판에 매력을 느꼈다.

 

《기억할게 삼거리시장》 시리즈는 노량진에 있는 삼거리시장을 7년 간 관찰한 끝에 출간한 작품이다. 7년 동안 매일 옥상에 올라가 삼거리시장을 찍었다.
아현동은 《LUEOS | SEOUL》 작업을 처음 시작한 곳이다. 지인들이 가장 많이 살던 동네여서, 그동안 작업한 수많은 동네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곳이다.

 

뒷골목 같은 서울

시끌벅적한 번화가를 지나 골목에 들어서면 소음은 희미해지고 으슥한 공기가 느껴진다. 왠지 알아서는 안 될 것 같은 민낯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너무 빠르게, 쉽게 변하는 서울을 지켜보면서 혼란스러웠다. 과연 어느 것이 진짜 서울의 모습인지. 적어도 《LUOES | SEOUL》 속 서울은 그 뒷골목을 들어섰을 때, 민낯을 마주했을 때의 풍경이다.

 

 

내내 여행하는 기분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아무 정보도, 기억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서울에 처음 떨어지게 된다면 어떨까. 우선 가장 먼저 보이는 버스를 잡아타고 노선을 따라 창밖을 구경할 것이다. 카메라 없이 맨눈으로. 이 작업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의 모든 동네를 다 담게 되면 사진집 중 몇 권을 종이책으로 출간해 작은 전시회를 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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