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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랑 소유하기
첫 사랑 소유하기
  • 이나연 에디터
  • 승인 2017.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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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제공 바다는기다란섬

 

[10월호] 세상에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이 있다는 걸 아직 가늠하지 못하는 나이에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건 전부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아이는 본능적으로 소유욕을 발휘한다.

집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가족여행. 설레어 방방 뛸 법도 하지만 아이는 여행 당일이 되어서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가족들이 어르고 달랜 끝에 마지못해 따라간 곳은 바다가 보이는 ‘네모난 집’이다.

바다와의 첫 만남. 그러나 바다는 아이에게 어떤 매력도 발산하지 못한다. 바닷물은 몸서리날 정도로 차갑고, 파도치는 바다는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하다. 놀러 온 며칠조차 견디기 어려울 만큼. 가족들이 빨리 집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놀 날만 기다리고 있다.

아이의 경계심은 여행 셋째 날이 되어서야 풀리기 시작한다. 볼멘 표정으로 엄마 손을 잡고 해변가에 갔을 때, 다리를 뻗어 물에 담갔을 때. 숙소에 콕 박혀 있기만 하던 아이는 다음날 깨우지도 않았는데 먼저 달려나간다. 오빠와 함께 해안선을 따라 걷기도 하고, 수면 위에 몸을 뉘여 파도가 잔잔하게 몸을 들어 올리는 걸 느끼면서 마침내 꽁꽁 얼었던 마음이 녹는다.

사랑에 빠진 순간이다. 그러자 머리 속이 온통 바다 생각으로 가득하다. 바다에 대해 알아가고 싶고, 이 끝은 어디인지, 어떤 소리를 품고 있는지 상상에 빠진다.

 

그러다가 딱 한 가지 생각만 남은 거야.

이 바다를 갖고 싶다.

 

그리고는 소유다. 이 바다를 가지고 싶다. ‘고유의 바다’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이제 바다는 아이에게 세상에서 하나 뿐인 내 것이 되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를 통째로 갖고 싶은 포부이건만, 소유권 주장은 소박하다. 어항에 바닷물을 담아가는 것이다. 집에 돌아가서도 어항에 담은 고유의 바다와 계속 사랑하는 것이다. 그 안에 담긴 것은 단순한 바닷물이 아니다. 한 세계가 담겨 있다. 생각들이 마음껏 헤엄치는 곳, 꿈꾸던 것들이 펼쳐지는 곳.

 

그림제공 바다는기다란섬

 

그러나 오빠에겐 동생의 소원이 욕심이었는지, 바닷물이 줄어든다며 말린다. 물이 줄어들면 바닥이 보일 수도 있다. 꼬리를 물고 커지는 상상력이 ‘바다 없는 지구’까지 이르자, 깔끔하게 포기한다. 아이가 욕심 부리지 않았던 이유는 바다 역시 탐욕을 부리지 않기 때문이다. 고유의 바다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할 뿐이다. 그저 파도가 밀려왔다가 물러가기를 되풀이한다. 바다의 시간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다.

여행 마지막 날 밤,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질 만큼 애틋한 둘 사이에 이별이 찾아왔다. 바다가 아이의 마음에 스며들고, 찰랑, 철렁, 찰싹, 쏴아- 바다의 소리는 아이의 숨소리에서도 들리게 되었다. 그 순간 아이는 첫사랑을 소유하는 방법을 깨닫는다. 바닷물을 어항에 담아오지 않아도, 고유의 바다가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하리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나만의 바다』
쿄 매클리어 글 | 캐티 모리 그림 | 권예리 옮김 | 바다는기다란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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