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12-18 13:37 (화)
희망도 절망도 사라지자, 평온해졌다
희망도 절망도 사라지자, 평온해졌다
  • 이나연 에디터
  • 승인 2017.12.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제공 을유문화사

 

생명을 향한 루쉰의 적막

[10월호]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시대가 어지러울수록 지성과 용맹을 갖춘 자들이 등장해 역사에 한 획을 긋는다.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루쉰의 시대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신해혁명, 5·4운동, 만주사변 등 중국의 역사적 사건들이 이어진 시기였다. 많은 문필가와 정치가들을 배출한 도시 사오싱의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차례로 세상을 뜨면서 잘 나가던 가문의 기세는 꺾이기 시작했다. 그 즈음, 청나라 왕조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일생에는 죽음과 몰락의 기운이 스며들어 있었고, 함부로 희망을 노래하지 않았다.

격동의 시기였던 19세기 말, 그는 봉건사회를 살아온 지식인이 신식 교육을 받아 계몽주의자로 변해가는 길을 걸었다. 당시 젊은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자신의 역량을 오롯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바치고자 했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근대국가’의 건설이었다. 그 국가는 오직 민중의 각성이 선행될 때라야 이룰 수 있는 것이었다.

그에게 혁명이란 생존과 관련되어 있었다.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선배와 스승을 믿지 말고 각자의 길을 찾아 걸어가기를 주문했다. 혁명의 길이 하나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한 길을 알려주다 청년들의 목숨이 스러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의 정신과 맞닿아있는 건 ‘성찰’이다. 자신의 치부를 돌아보지 못하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혁명도 일어나지 않는다. 설령 혁명을 일으킨다 한들 자기검열과 성찰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몸부림이자 위선에 불과하다. 그는 스스로를 혁명가나 지도자라고 일컫지 않았다. ‘기껏해야 교량 가운데의 나무 하나, 돌 하나’에 지나지 않는, 지나가는 것들과 태어나는 것들을 잇는 교량적 존재이자 중간물로 인식했다. 자신의 삶과 글이 그런 교량으로 존재하기를, 뒤에 오는 것들을 위해 흔쾌히 소멸해가는 것이기를 원했다.

그는 일본군의 군사 기밀을 정탐한 중국인이 참수당하는 사진을 본 ‘환등기 사건’ 이후로 의학도의 꿈을 접는다. 중요한 건 육신이 아니라 정신을 살리는 것이었다. 문예文藝가 할 수 있는 일임을 깨닫고 메스 대신 펜을 들었다. 이 사건은 그를 ‘적막’의 늪에 빠지게 했고, 신해혁명은 이 적막을 내면으로 더 깊숙히 밀어넣었다.

적막, 그의 글쓰기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소설집 『납함』의 서문을 통해 자신의 글이 ‘소설 비슷한 것’, 글쓰기에 대한 확신보다는 친구들의 권유로 말미암아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광인일기』는 그 권유에 대한 응답이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 루쉰’을 세상에 알렸을 때, 그는 서른여덟 살이었다. 수 년 간의 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혁명정부의 관료까지 지냈으니, 그의 글쓰기가 혈기 왕성한 청년의 무모한 도전은 아니다. 글을 쓸 때만이 살아있는 순간이었고, 140여 개의 필명으로 무려 700여 만 자를 썼다. 격동의 시절 혁명가들은 말한다. 결국 승리하는 건 우리일 테니 희망을 잃지 말라고. 그 말은 공허한 메아리다. 그의 삶에는 희망도, 절망도 없었다. 하여 그는 ‘평안’하다. 그리고 그 평온함은 ‘생명’을 향한다.

*『루쉰, 길 없는 대지』를 참고 인용했습니다.

 

 

나는 시대의 폐단을 공격한 모든 글은 반드시 시대의 폐단과 더불어 사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혈구가 종기를 생성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제거되지 않으면, 다시 말하면 자신의 생명 유지는 바로 병균이 여전히 존재함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열풍』, 「제목에 부쳐」중

 

 

『루쉰 소설 전집』
을유문화사 | 2008년 10월

 

“너희들은 고칠 수 있어. 진심으로 마음을 고쳐먹어야 돼! 장차 사람을 잡아먹는 놈들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해. 너희들이 마음을 고치지 않으면 자신도 다 잡아먹히고 말 거야. 아무리 많이 낳는다고 해도 진정한 사람들에게 멸종당하고 말 거야. 사냥꾼이 늑대를 모두 잡아 죽이듯이! 벌레처럼 말이야!”

-「광인일기」중에서

 

찬란한 4천 년 중국 역사, 그 속에서 루쉰은 야만을 발견한다. 사람의 몸을 뜯어 살점을 피에 찍어먹던 '식인'의 역사. 문명이라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이 병증은 당시 노골적이었고, 보편적이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나'는 저들의 정신을 고치고자 했지만, 벼락처럼 관통하는 한 질문 앞에서 무너진다. 과연 나는 어떤가. 이 문명에서, 저들과 섞여 살아온 나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자유롭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

1918년 잡지 『신청년』을 통해 발표한 광인일기는 루쉰의 데뷔작이자 최초의 중국 현대소설이다. 그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20여 년 동안 멈추지 않고 글을 쓴다. 지난 시간들 동안 자신을 무척 고통스럽게 했던 '적막'을 떨쳐내려는 듯이.

 

『아Q정전』
열린책들 | 2011년 3월

 

그러나 그는 곧 패배를 승리로 전환시켰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자기 뺨을 힘껏 두 차례 연달아 때렸다. 얼얼하게 아파 왔다. 자기 뺨을 때리고 나서야 그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때린 것은 자신이고 얻어맞은 것은 또 다른 자신인 것 같았다. 얼마 후에는 자신이 남을 때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얼굴이 아직 얼얼하긴 했지만 마음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이런 승리감에 젖어 그는 자리에 누웠다. 그러고는 푹 잠들었다.

-「아Q정전」 중에서

아Q의 감정선은 늘 반복된다. 화가 나거나 억울하다가도 곧 마음이 평안해지더니, 이윽고 몹시 만족하여 의기양양 잠이 든다. ‘정신승리’ 혹은 ‘자기합리화’에 특화된 인간이다. 그러나 이는 아Q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당시 중국인을 상징하는 루쉰의 묘사다.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어쭙잖은 변명으로 자위하는 태도. 아Q에게 혁명이란 '갖고 싶은 건 모두 내 거'인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아편전쟁 이후 본격적인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청 왕조가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을 때도, 사람들은 과거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 환부를 들여다보지 못하는 무수한 아Q에게 루쉰은 철퇴를 가한다.

 

『들풀』
그린비 | 2011년 7월

 

-그렇군요. 그러면, 어디로 가시는 길인지, 물어봐도 되겠소?

-괜찮고 말고요.―그렇지만, 저도 모릅니다. 기억을 할 수 있을 때부터 저는, 이렇게 걷고 있었습니다, 어디론가 가려고. 그곳은, 앞입니다. 먼 길을 걸었다는 것만 생각납니다. 지금 이곳에 와 있지요. 저는 인차 저 쪽 (서쪽을 가리키며) 앞쪽! 으로, 계속해서 걸어, 갈 것입니다.

-「길손」 중에서

노인은 길에서 만난 객에게 통상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러나 이 사내는 한결같이 답한다. “모르겠다”고. 자신의 이름도, 목적지도 모두 기억나지 않는다고. 눈 떠보니 그저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노라고. 지친 사내에게 노인은 되돌아갈 것을 권유하지만, 이 여정에서 되돌아가는 길이란 없다. 설령 돌아간대도 거기에는 추방과 감옥, 눈물이 있을 뿐. 인간은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가야만 한다. 길이 없다면 밟아 만들어서라도 가야만 한다. 끝까지 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더라도, 산 자들은 어떻게서든 살아야 한다. 루쉰은 생명을 갈망했다. 생명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죽음을 피해 달아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 길은 생명의 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