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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혁명시대, 인간이 답이다?
4차 혁명시대, 인간이 답이다?
  • 최유정 에디터
  • 승인 2017.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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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티 논하는 ‘스마트 인간’의 발칙한 생각
『휴마트씽킹』 저자 윤석만 인터뷰

 

 

 

 

 

 

[10월호] 국회, 청와대 출입기자를 거쳐 교육기자 7년. 2012년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겪으며 학교폭력 해결을 위한 고민에 사로잡혔던 현직 기자가 있다. ‘강남 엄마’들에 대한 선입견을 안은 채, 그들의 요청으로 재능기부 강의를 진행했을 때 “어머니들은 우리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컸으면 좋겠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는 불편한 질문 던지기를 망설이지 않은 기자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강의가 끝나고 기자의 질문에 엄마들은 꽤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공감했다. 정말 좋은 강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기자는 알았다. 성과만 낼 줄 아는 아이로 키우기보다 인성이 바른 아이로 키우고자 하는 열망, 살아있구나. 스마트하지만 휴머니티도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의 발견, 중앙일보 윤석만 기자를 만났다.

 


 

휴마트씽킹? 생소하다.

매년 ‘올해의 어젠다(agenda)’를 정하는데요. 교육기자를 하면서 자연히 이와 관련한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알게 됐어요. 입시교육에 치여 등한시하게 됐던 ‘인성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이 상당하다고 느끼던 2013년 당시, 마침 어젠다 회의를 앞두고 ‘스마트하면서도 인간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은 될 수 없을까’하는 고민을 해봤어요. 그래서 조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단어인 ‘휴마트(Smart+Humanity)’를 만들어봤어요. 어젠다는 그렇게 휴마트로 낙점됐고, 이것이 『휴마트씽킹』의 시초가 됐죠.

 

책을 보니 4차 혁명시대를 ‘나눔’에서 찾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골고루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잘 하는 사람이 잘 사는 게 맞다는 논리를 가진 지도자층이 아직도 상당한데, 기술적으로 보다 발전된 사회를 일컫는 4차 혁명시대를 두고 왜 ‘나눔’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나

첫 번째 이유는 인간이 가진 사회성 때문이에요. 우리는 지금까지, 인간이 똑똑해서 지구의 주인 ‘노릇’을 해왔다고 믿어 왔지만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의 지적 역량에는 사실 큰 차이가 없거든요.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언어와 사회성이에요. 그들은 개체로서 그리 강한 존재는 아니었지만 군집을 이루고, 사회를 만들며 힘을 키웠죠. 알파고와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의 대결에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미 상당히 많은 영역에서 인공지능(AI)은 인간보다 똑똑하다는 게 증명된 사례니까요. 저는 그렇다고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아요. 인간이 가진, 대체될 수 없는 강점이 바로 공동체 역량이고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이죠. 공동체를 생각하는 정신이 덕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해서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전제 조건으로 만들었고, 우리는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닌 거죠.

두 번째 이유는 이제 나눔을 실천해도 나의 생계가 위협받지 않을 만큼 사회적인 물적 안정의 토대가 마련됐다는 거예요. 인간의 사회에도 분명 약육강식의 법칙은 존재하죠. 다 같이 잘 산다는 건 현대사회에서 쉽지 않았어요. 그러나 바로 이 AI를 활용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고, 더 많은 영역에서 그렇게 될 겁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실제 유의미한 직업 활동을 하는 계층은 20퍼센트에 불과할 거예요. 인간이 더 이상 노동을 하지 않아도 우리 사회가 굴러갈 수 있다는 건데요. 이것은 보다 합리적인 생산성 확보와 문화 변화로 귀결될 거예요. 예를 들어, 우리가 운전을 할 때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가는 과정이 왜 쉽게 막힐까요? 순서대로 차례를 지킨다면 그렇게까지 밀리지 않는데, 누군가는 꼭 끼어들기를 해서 정체가 심화되잖아요. 너무 비합리적인 상황이죠. 그런데 이 같은 일들을 AI 활용으로 대폭 줄일 수 있어요. 인간이 했을 때 더 비효율적일 만한 일들을 AI가 대체하기 때문인데요. 인간의 노동 생산성이 과거에 비해 더욱 획기적으로 변할 겁니다.

이 두 가지 전제에서 나눔이 가능해요. 지금까지는 내가 가진 걸 나눈다면 쉽게 뒤쳐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회였는데 앞으로는 물적 토대가 달라지기 때문에 충분히 나눠도 되는 결과가 나타나는 거죠. 은퇴하는 사람들이 단발성 봉사활동이 아닌 ‘재능기부’ 형태의 활동을 늘려가는 현상이 비슷하다고 봅니다. 재능기부는 소모적이지 않고 보람을 안겨주니까요.

 

교육, 문화, 미래인재의 인성역량을 핵심 키워드로 삼고 있다. 그런데 유능한 젊은 인재나 학자들이 학계나 전문분야에서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배척당하는 문화도 남아있고, 수직적 기업 문화에 환멸을 느끼는 청년 인재도 많다. 우리 사회와 기업문화가 어떤 변화를 꾀해야 그들을 담아낼 수 있겠나

최근 2~3년간 경제학자 토마 피게티의 『21세기 자본』이 아주 유행했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꾸준한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올리고 있고요. 둘 다 아주 어려운 책인데도 불구하고 많이 읽히는 까닭이 뭘까요? 저는 한국인들의, 정의에 대한 갈증 때문이라고 봐요. 샌델은 사회 정의를, 피게티는 분배 정의를 말했는데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여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은 반증이죠.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국민들이 이뤄낸 촛불시위, 유독 ‘갑질’을 키워드로 하는 고발 기사가 끊이지 않는 현상은 과거엔 그러려니 했던 일들에 분노하고 그것들을 바꿔야 한다고 표출하는 분위기가 됐기 때문이죠. 초고속 경제 성장을 이루고, 경제적 선진국이 된 지금에 필요한 시민역량 육성이 필요한 이유예요. 어른들은 그대로 두고 젊은이들에게만 그 변화를 강요하려는 게 아니라, 아무래도 이미 과거 사회에 알맞은 가치관이 고착화된 기성세대보다는 새로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젊은 세대들에 대한 기대때문이에요.

제가 주장하는 ‘휴마트’한 인재는 천성이 착하다는 말이 아닌 교육 안에서 그 역량이 커진다는 걸 의미하거든요. 책에서 소개한 구글의 사례로도 설명했지만, 4차 혁명시대로의 변화에 필요한 우리들의 인식 변화를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받아들이고 이에 맞는 변화 방식을 꾀해야 한다고 봐요. 구글은 협력할 줄 아는 인재, 지적 겸손을 갖춘 사람을 원합니다. 그런 이들을 뽑아야 더 좋은 성과가 나니까요. 그렇다면 그러한 인재를 담아낼 수 있는 기업문화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4차 혁명시대를 이끌만한 기업이 되고 싶다면 리더와 중간 관리자로 있는 간부들이 변화해야 해요. 우리 사회에서 ‘꼰대’라고 부르는 이들이겠죠? 그들의 소통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존댓말이라는 특수한 언어체계가 있잖아요. 당연히 위계구조가 형성되죠. 그래서 우리나라가 유독 이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존댓말 자체는 아주 좋은 문화에요. 문제는 이 같은 존중의 가치가 담긴 언어를 쌍방이 사용해야 한다는 거죠. 선배들이 후배들에게도 존댓말을 쓰고 그들을 존중해야 새롭게 사회에 나오는 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펼 수 있으니까요.

 

인성교육이란 고로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주장으로도 읽힌다. 그런데 그러한 교육이 현재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입사하게 해줄지 의문이다. 이상적인 이야기로도 들리는데

지금 당장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죠. 그런데 인생은 마라톤이잖아요? 멀리 보자면 분명 아주 큰 힘이 됩니다. 그렇게 바뀌어 가고 있어요. 지인의 사례인데요. 국내 유수의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까지 다녀온데다 3개 외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유능한 인재가 팀원으로 들어왔대요. 기대가 컸는데, 막상 함께 일을 해보니 도저히 협업을 할 수 없다고, 고민이라고 토로하더라고요. 이유를 물으니, 업무라는 건 시행착오도 있게 마련이고 프로젝트가 늘 성공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완전체 성향을 가진 그 친구는 프로젝트가 실패할 땐 그 원인을 함께 일하는 다른 팀원에게 찾고, 나아가서는 ‘성공할리 없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팀장을 원망한다는 거예요. 손해를 좀 보더라도 함께 도와야 하는 일도 있고, 그래야 성과가 나오는 일이 있는데도 당장 자신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안 되면 함께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불만이었어요. 완벽한 성과주의, 1등, 내신 1등급만을 목표로 삼고 길러진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인 거죠. 구글에서 지적하는 ‘지적 겸손’이란 바로 이를 뜻해요.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겸손 말이에요. 비슷한 능력을 가진 인재 중에 소위 ‘스펙’이 좋은 사람과 팀원들과 두루 합을 맞출 수 있는 사람 중 누가 더 기업에게 필요한 인재일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 거예요.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계층 간 이동은 더 어렵게 됐다는 평이 줄을 잇는다.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휴마트씽킹’으로 갈 변화, 실현 가능하겠나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보고, 낙관적인 희망을 갖고 있어요. 문재인 대통령을 보며 느낀 점이 있는데요. 저는 지난 투표에서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는데도 현재 국정을 이끄는 모습을 보니 ‘잘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대통령선거 당시 40%를 조금 넘는 지지율로 당선된 문 대통령이 지금은 70~80%라는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문 대통령을 선택하지 않았던 국민들도 지금은 지지하고 있다는 이야기잖아요. 바로 소통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정책적으로도 희망을 봤는데, 고전 주류 경제학에서는 관심을 받지 못했던 소득주도성장론을 채택해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에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 소득이 노동 소득보다 높을 수밖에 없는데, 실질 임금을 높여 그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점이 소득주도성장론의 핵심이죠. 그 연장선상에서 최저임금 1만원을 향해 가고 있고요. 더욱 급진적인 경제정책으로 분류되는 글로벌자본세에 대한 세계적인 인식 변화도 이뤄지고 있고요.

바로 지난해까지는 ‘급진적’이라고 봤던 정책을 시도하는 현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이 현상, 저는 분명 ‘희망’이라고 봅니다.

 

4차 혁명시대, 말하려는 본질이 간략히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 제가 계속 주장하는 바가 있는데요. 4차 ‘산업’ 혁명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는 겁니다. 이전 혁명들은 분명 그 시대에 필요한 변화였어요. 20세기 교육은 산업사회에 필요한 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 그것을 위한 대중교육이었어요. 산업에서의 생산 능력을 익힐 수 있도록 읽고, 쓸 줄 알아야 하고 수학도 할 줄 알아야 기술을 익힐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삶의 목적을 찾는 교육보다는 노동, 기술을 위한 교육일 수밖에 없었어요. 19세기까지의 교육은 귀족들을 위한 교육이었고요. 그들은 노동에서부터 자유로웠고 생산이 아닌 삶의 목적을 위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라틴어를 배우고, 예술이 융성했던 거잖아요. 그런데 4차 혁명은 기술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 문화와 사회 전체가 바뀌는 것을 의미해요. 기술, 과학의 변화만이 아니라는 게 관전 포인트입니다. 교육과 문화 관점에서 보면 본질을 휴머니티라고 볼 수 있어요. 르네상스 같은 거죠. 보카치오가 처음 작품을 쓸 때 그것이 르네상스의 서막이 될 줄은 몰랐잖아요. 조금씩 인본주의 철학이 열리고 르네상스가 꽃 피우게 됐죠. 4차 혁명 역시 인본주의가 근본이 될 겁니다. 그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근거를 교육에서 찾아봤던 것이고요. 인간의 행복과 삶의 목적. 새로운 2차 르네상스가 4차 혁명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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