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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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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나연 에디터
  • 승인 201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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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xabay rawpix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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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어떤 면에서 여행과 책은 환상적인 궁합이다. 나의 근육을 시원하게 풀어 줄 액티비티 투어에도, 침묵의 시간을 즐기는 나홀로 여행에도 책은 다양한 의미에서 우리의 여행을 풍성하게 해주고는 한다. 책을 ‘곁들인’ 기행이라는 타이틀 아래 오히려 참 다른 책들을 선정했다. 책을 통해 우리 입에 달콤한 주전부리의 ‘속내’를 되짚는가 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일본 전역의 동네 책방을 여행한다. 리스본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조국 포르투갈을 알리기 위해 쓴 책도 있다. 전혀 연결고리가 없을 것 같지만 책을 통한, 책을 곁들인 ‘시간’이라는 점에서 같은 결이다.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여행 가이드북

『페소아의 리스본』에 대해 말하기 전, 저자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누구인지 설명하고자 한다. 그는 1888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잠시 살았으나 혼자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온다. 리스본대학교 문학부에 진학했지만 생계 때문에 결국 학업 대신 무역회사에서 통신문을 번역했다. 단순한 회사원으로 알려졌던 페소아는 1935년 그가 죽고 나서야 방에 있는 궤짝에서 여러 가지 필명으로 작성한 원고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작가로 알려진다. 궤짝에 있던 페소아의 글들은 친구들과 봉사자 덕분에 하나씩 세상에 발표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작가로 인정받는다.

『페소아의 리스본』원고 또한 이 궤짝 안에 있었다고 한다. 많은 연구자들이 내용을 꼼꼼히 따져 본 결과 이 원고는 1925년에 쓰였다고 결론지었다. 손으로 흘려 쓴 다른 원고에 비해 타자기로 타이핑 해서 깔끔하게 정리한 『페소아의 리스본』 원고 옆에는 글을 쓰게 된 동기가 적혀 있었다.

“보통의 영국인, 그뿐만 아니라 (스페인 사람을 제외하면) 어느 나라 사람이건 포르투갈을 유럽 어딘가에 있는 작은 나라로, 심지어 스페인의 한 지방인 줄로만 안다.”

외국에서 사는 동안 아무도 자신의 고향을 알아주지 못한 현실에 충격을 받았던 것일까. 비장한 동기를 보니 페소아의 포르투갈 그리고 리스본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페소아의 리스본』은 책을 읽는 독자가 여객선을 타고 방금 리스본에 도착했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시작한다. 리스본을 있는 그대로 알리는 것이 목적인 가이드북이기에 낯선 도시에 환상을 줄 만한 미사여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건축물, 광장, 기념비들의 크기가 얼마인지, 장식은 어떤 미술 사조를 따르는지,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 생생하게 전해주려 노력한다. 이와 함께 유럽의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유명한 리스본이 어떤 역사를 보내면서 (페소아의 기준으로)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말한다. 세심한 저자의 글에 독자도 덩달아 리스본을 꼼꼼하고 세심하게 알아갈 수 있다.

아무리 페소아가 리스본에 대해 섬세하게 서술하였다고 해도 글이 쓰인지 95년이나 된 가이드북이 현재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그런데 놀라운 건 95년 전 리스본과 지금의 리스본이 거의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발전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1755년 대지진을 겪은 리스본이 다시 한 번 재건한 도시를 소중히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서울시에선 미래유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지만 그 이전부터 우리 역사적 증거인 근대 문화유산을 꾸준히 관리·보존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서울뿐 아니라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페소아가 리스본을 사랑했던 것처럼, 한 사람이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선 도시의 역사와 유산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페소아의 리스본』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 박소현 옮김 | 최경화 감수 | 컬처그라피 | 2017년 7월

 


 

커피 앤드 도넛? 바이크 앤드 북!

달릴 때 뺨과 피부를 스치는 공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이동 수단. 비가 오면 젖고, 눈이 오면 맞으며 달리는 이동 수단. 오토바이는 저자의 유년시절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아버지 뒤에 앉아 바람을 가르며 전진하던 순간 오토바이의 매력에 빠져40년째 그 순간을 기억하고 사는 오토바이 마니아다.

이 책은 2015년 9월부터 10월 한 달여 동안 일본의 도서관, 만화박물관을 비롯해 동네서점 19곳을 순례한 기록이다. 부산에서 출발해 시모노세키, 최북단 왓카나이를 거쳐 다시 시모노세키로 돌아오는 동선이다. 치밀한 계획을 세우거나 오랜 숙원 끝에 떠난 여행이 아니다. 경비 250만 원을 들고 무작정 떠났다. 오토바이를 가지고.

왜 일본일까. 가까워서? 좋아하는 나라라서? 장사가 안돼서다. 저자는 경남 진주에 자리한 헌책방 ‘소소책방’을 운영한다. 인터넷신문기자, 사진 서적 편집자 등을 거쳐 몇 해 전 헌책방지기로 직업을 바꿨다. 성공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책방을 연 지 2년 만에 치솟는 임대료 앞에서 생존 위기를 직면했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과 비슷한 출판시장을 가진 일본을 찾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버블경제를 뒤에 업고 우후죽순 서점이 생겼으나, 1990년대 이후 전국 서점 중 37%가 넘는 곳이 폐업했다.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이 슬그머니 자리 잡기 시작하더니 독식하기 시작했다. 동네 책방은 언저리로 밀려나 거대 자본의 피해자가 되어 계속 쓰러졌다. 그러나 일본에는 출판계 불황이라는 어려운 현실을 딛고 살아남은 동네 서점들이 있다.

후쿠오카의 책방지기들이 입을 모아 추천한 ‘북스 큐브릭’은 동네 주민에게 사랑받고 있는 동네 책방이다.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북페스티벌인 ‘북쿠오카’ 기획자를 만났을 때 정부나 지자체, 기업 등의 지원을 일절 받지 않는다고 잘라 말하는 모습이 놀랍게 느껴졌다. 과연 소소책방이 있는 진주에서도 이런 행사가 가능할까 부럽기도 했다. 강남 코엑스에 있는 별마당도서관이 벤치마킹한 ‘다케오 시립도서관’의 점장은 책만 팔아서는 돈이 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서점이 서적 자체에 집착하기 때문에 서점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교토의 ‘게이분샤 서점’은 온라인서점과 중고서점 사이에서 꼿꼿하게 버텨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서점으로 성장했다. 장대같이 내리꽂던 비를 뚫고 ‘이와타서점’에 도착해 주인을 만났다. 여행의 목적이기도 했던 이와타서점은 ‘일만엔선서’ 붐을 일으킨 곳이다. 고객이 1만엔을 보내면 그의 독서취향과 관심사, 필요한 책을 꼼꼼하게 조사해서 1만엔 어치의 책을 골라 우편으로 보내주는 이벤트다. 히로시마에 있는 ‘아카데미 서점’에서는 오로지 매장 고객의 편의를 위해 직원을 여러 명 두는 운영방침과 중고서점 옆에서 자신만의 콘텐츠에 집중하는 걸 보며 반성하기도 한다.

그동안 소소책방이 매체에 소개되고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이는 걸 질색했다. 눈에 띄지 않고 올 사람만 오는 조용한 책방이 되기를 원했다. 책과 책방에 대한 애정은 오토바이에도 가득하다. 도쿄에서는 눈 뜨자마자 오토바이를 세워둔 곳에 가서 오토바이의 안위를 살필 정도다. 저자는 저렴한 비용과 빠른 속도를 장점으로 꼽은 오토바이를 이동 수단으로 선택했다. 단순한 이유였다고 밝히고 있지만, 동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책 향기를 맡기에는 오토바이가 적격이었을 것이다. 작은 책방을 꾸려가는 책방지기로서도, 오토바이 매장 앞에서 행복한 방황을 하는 라이더로서도 충실한 책이다.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

조경국 지음 | 유유 | 2017년 8월 

 


 

그저 생존하려고 지구에 있는 게 아니니까

먹는 것에 천착하는 일을 ‘상스럽게’ 여기던 때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섭취 방식을 최대한 구체화해서 ‘상놈’들과의 구별을 보다 정밀하게 하고팠던 그들이 우리네 지배계층이었기 때문에 어느 샌가 우리에게도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모른다. 먹는 것을 ‘무작정’ 밝히면 우아하지 못한 일.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가 지은 『사소절』에는 양반이 지켜야 할 올바른 식사예절에 대해 나오는데, 쌈을 싸 먹을 채소를 그릇에 담고 젓가락을 사용해 어떻게 접어서 입 안으로 넣어야 하는지가 소개돼 있다. 손에 직접적으로 채소를 놓고 쌈을 싸는 일을 아마도 양반답지 못한 것으로 치부했나 보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이 같은 내용이 소개되자 참석한 패널 한 명이 일갈한다.

“그러니까 나라가 망하지. 양반들이 맨날 그런 짓 하면서 시간 다 보내니까.”

쌈을 젓가락으로 접어 먹든 손으로 움켜쥐고 먹든 그 방식보다 중요한 건 ‘쌈’이 갖는 본질일텐데 조선시대 양반들은 아마도 쌈을 젓가락으로 접어 먹느라 그 참 맛은 끝내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당시 양반들이 지금의 심란 세티라는 서양 여인을 만났다면 아마도 천인공노하며 연신 마른 헛기침을 냈을지 모른다. 상업마저 천시하는 문화에서 심지어 음식에 대한 ‘연구’라니. 그렇다. 『사소절』과 달리 『빵 와인 초콜릿』에는 음식 그 자체가 꽤나 학문적이고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다. (문화사대주의적인 관점이 아니라 단지 책의 비교일 뿐이니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그런데 그 음식에 대한 글이란 것이 우리가 흔히 인터넷 블로그나 생활전문잡지에서 볼 수 있는 ‘나만의 레시피’ 같은 내용은 아니니 이것이 일단 이 책이 갖는 특이점이다. 물론 먹는 방식에 대한 소개도 읽는 이가 조금 멋쩍을 만큼 꽤 진지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방식이란 먹는 사람의 품위보다는 음식의 풍미를 극대화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세티가 잡은 초점이 음식의 ‘본질’인 이유다.

저자는 빵, 와인, 초콜릿으로 대변되는 부식副食 또는 간식에 대한 기원을 탐구한다. 그리고 이들 부식을 인류의 영혼을 살찌우는 주식主食이라 표현하며 자신의 연구 혹은 글의 중심 소재로 삼았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소재가 음식의 본질이란 말인가? 책에 담긴 원류는 사실 단순히 밀, 카카오, 커피 등 재료에 담긴 ‘맛’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생물・지리・사회학적인 부분까지 아우르는 하나의 철학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식만큼이나 사실은 상당한 양이 소비되는 이들 부식이 만들어지기까지 세계 많은 나라가 겪고 있는 생산의 진통.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중’을 대상으로 삼아 막대한 수요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획일화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생물의 종류 등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주제를 집중도 있게 쏟아낸다.

그런데 이 책은 분명 불공정 거래 무역에 대한 비판이나 고발을 주제로 삼고 있지는 않다. 저자가 잉글랜드의 효모균 배양 실험실, 에콰도르의 카카오 대농장 등 4년간 여섯 대륙을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의 수만큼 그 과정에서 알아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담겼을 뿐이다. 과거에는 전 세계 여러 지역 산지에서 나고 자란 다양한 음식을 선택할 수 있었던 반면 오늘날 세계 인구가 얻는 칼로리의 95%가 겨우 30가지밖에 안 되는 종에서 나오게 된 이유를 찾아 떠났던 여행이기에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결론적으로 먹는 것, 그리고 맛보는 것이 우리가 먹거리를 변혁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길임을 주장이다. ‘잘 먹는다’는 일은 인간에게 그만큼 중요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책을 통해 음식 그 뒤편에 담긴 인간의 삶과 본질을 생각해 볼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빵 와인 초콜릿』

심란 세티 지음 | 윤길순 옮김 | 동녘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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