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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인물] 상징이 돼버린 이들의 이야기
[11월의 인물] 상징이 돼버린 이들의 이야기
  • 이나연 에디터
  • 승인 2017.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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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돼버린

#김광석 #유재하 #김수영

ⓒ plxabay rjasso
ⓒ plxabay rjasso

[11월호] 문학 장르를 통틀어 시는 가장 음악적인 요소를 지녔다. 하기야 어쩌면 탄생부터 음악을 품은 것이 시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언어를 노래하는 시인과 음률을 노래하는 가수는 음악 안에서 하나다.

어느새 11월. 가을이라고 이르기에는 서늘한 날씨가 마음에 걸리고, 겨울이라기에는 어딘지 찬바람이 모자라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이맘때면 작품으로든 인물 자체로든 우리 곁에 소환되는 이들이 있다. 올해는 더욱 이 세 사람이 각별하게 다가온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진 가수 김광석의 죽음을 재조명한 영화 <김광석>이 지난 8월 개봉하면서 그는 다시 ‘사건’이 되어 돌아왔다. 단 한 장의 앨범으로 전설이 돼버린 가수 유재하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30년, 한 세대가 지났건만 ‘유재하의 음악’이 지닌 힘은 여전하다. 시인 김수영 역시 마찬가지다. 시민의 힘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하며 우린 민중의 자각과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민주주의를 향한 그의 열망으로 쓰인 시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교훈으로 되살아났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도 잊히지 않을

#김광석

ⓒ 2016 〈김광석을 보다展 - 만나다·듣다·그리다〉
ⓒ 2016 〈김광석을 보다展 - 만나다·듣다·그리다〉

김광석을 떠올릴 때면 으레 함께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 몸집만한 통기타를 어깨에 두르고, 목에는 하모니카를 매단 모습. 웃으면 눈매는 하회탈 같이 휘어지고, 더 활짝 웃으면 잇몸이 드러나는 얼굴. 아예 저음이지도, 그렇다고 고음도 아닌 목소리로 느릿하게 한 마디 한 마디를 이어가는 어조.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서른 즈음에>, <먼지가 되어> 등 숱한 히트곡으로 대중의 귀를 즐겁게 해준 그의 음악은 뮤지컬과 영화로도 다양하게 변주됐다. 혹자는 그를 두고 ‘영혼을 위로해주는’ 가수라고 평했다. 기타 선율과 함께 담담하게 이어지는 노래를 듣고 있자면 금세 감동으로 차오르는 가슴을 느낄 수 있다.

12주기였던 2008년에는 대학로에 ‘노래비’가 세워졌다. 세상을 뜨기 전 해, 공연순회를 1천회 한 소극장 앞이었다.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노래비 속 얼굴은 근심 없이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하다.

김광석이라는 세 글자가 더 애틋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그의 생애에 있다. 1996년 1월 6일, 음력으로는 11월 15일 세상을 떴다. 스스로 떠났다고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웠다.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었다. 그의 죽음에 관해 의혹 어린 시선이 무수히 있었다. 최근 그의 죽음과 관련된 의혹이 수면 위로 제대로 떠오르기도 했다. 연일 뉴스를 뜨겁게 달구는 ‘진실공방’이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 한 구석에서 소유욕이 슬쩍 고개를 내민다. 이 음악을 지금도 듣고 싶다는 마음. 그가 우리 곁에 오래 있어주었다면 더 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욕심.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 있는 자들만이 분연히 서로의 입장을 주장하고,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

내 텅빈 방안에 가득한데

 

이렇게 홀로 누워 천정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 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방울들

 

지나간 시간은 추억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 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중


 

단 한 번, 단 한 장

#유재하

(위) 1집 〈사랑하기 때문에〉 / (아래) 추모앨범 〈1987 다시 돌아온 그대위해〉
(위) 1집 〈사랑하기 때문에〉 / (아래) 추모앨범 〈1987 다시 돌아온 그대위해〉

천재 뮤지션…그러나 요절한 비운의 뮤지션…

흔히 따라붙는 수식어다. 1987년 11월 1일,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25세에 생을 마감한 유재하의 이야기다. 그 해는 자신의 첫 음반을 세상에 내놓은 때이기도 했다. 그 음반은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이 됐다.

‘천재’와 ‘요절’이라는 키워드는 앞서 소개한 김광석에게도 해당하는 수식어인데, 유재하에게는 한 가지 더 중요한 키워드가 있다. ‘멀티’다. 그는 피아노를 비롯해 키보드, 바이올린, 첼로, 기타를 능수능란하게 연주하는 솜씨를 지녔었다. 여기에 작사, 작곡, 편곡까지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였던 것이다. 요즘이야 싱어송라이터가 흔하다지만, 당시 가요계에서는 이 앳된 청년의 등장이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클래식과 재즈를 대중가요에 접목하는 시도도 했다하니 어린나이에 이미 확고한 음악세계와 방향성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는 국내 대중음악 사상 최초로 작사․작곡․편곡을 혼자 책임진 ‘음악적 자주自主의 완전 실현’을 일궈낸 성과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앨범은 그의 러브스토리를 기반으로 만든 곡으로 채워졌다. 초등학교 동창이자 그의 노래를 통틀어 단 한 명만 등장했다는 바로 그 여인이다.

선배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을 결성, 김현식 3집 수록곡 <가리워진 길>을 작곡해 명반을 만들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일까. 유재하가 세상을 떠난 지 꼭 3년 만에 김현식도 세상을 떴다. 11월을 시작하는 날이면, 별이 된 이들을 회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현재 그를 기리는 ‘유재하 음악장학회가’ 설립되어 있으며, 1989년부터 매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단 한 장의 앨범이 후대에 남긴 영향이 이토록 크다.

 

붙들 수 없는 꿈의 조각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쳇바퀴 돌 듯 끝이 없는 방황에

오늘도 매달려 가네

 

거짓인 줄 알면서도 겉으론 감추며

한숨 섞인 말 한마디에 나만의 진실 담겨 있는 듯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 가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중


 

여, 더러운 현실에 카악 침을 뱉어라!

#김수영

사진제공 민음사
사진제공 민음사

소설가 한강은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미국이 전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 혁명을 다룬 『소년이 온다』를 집필할 때 광주에 국한하지 않고 제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미국 원주민 대학살 등 전 세계적인 사건들을 조사했다. 세계 역사에 드러난 전 지구적인 인류애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앞서 우리나라 근현대 격동기를 살며 가혹한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노래한 이가 있다. 1921년 11월 태어난 시인 김수영이다.

그의 청년기는 일제강점과 6․5 전쟁이라는 아픔으로 얼룩져있었다. 서른 살에는 의용군에 강제로 동원되어 평양 북쪽에 배치되었다가 필사적으로 탈출했으나 포로수용소에 갇히기까지 했다. 그의 삶을 요동치게 만든 건 4․9혁명이었다. 도시문명을 향해 펜을 겨누던 모더니스트는 4․9를 기점으로 현실로 촉을 옮겨왔다. 그는 격렬하게 현실에 저항했고, 참여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 사건은 민주주의의 싹이 움트려는 국가를 볕을 쬐기도 전에 질식시켜버리는 것이었다. 자유란 두 번째나 혹은 다섯 번째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맨 마지막으로 생명과 더불어 없어지는 것이라는 미국 시인 휘트먼의 말처럼, 그는 ‘끝까지 싸우고자’ 했다. 될 수 있으면 조용하게, 아름답게, 그러나 강하게. 이렇게 싸우는 법을 민중에게 알려주는 것이 지성인의 의무라고 김수영은 생각했고, 그 방법은 정신의 구원이었다. 더러운 현실에서 시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에게 혁명은 ‘사랑의 운동’이었다. 사랑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 시인들의 다다이즘 운동이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문학자들의 비트 운동도, 한반도에서 물결쳤던 4월의 혁명도 모두 사랑하기 위한 운동이었다.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는 자유가 없다. 사랑이 없는 자유는 방종에 불과하다.

그의 마지막 시 「풀」에서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언제나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은 민중이었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쓰러지길 반복하다가도 기어코 다시 일어서고야 마는 들풀. 김수영은 풀처럼 밟혀도, 밟혀도 되살아나는 민중을 염원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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