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11-28 11:04 (수)
샘터 김성구 대표
샘터 김성구 대표
  • 최유정 에디터
  • 승인 2017.12.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숭동 떠나 여는 ‘진짜 1막’

다시, 샘터 … 서곡은 끝났다

[11월호] Since 1970년. (주) 샘터사가 지난 9월, 『월간 샘터』 지령 572호 발행을 끝으로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서의 대학로 시대 막을 내렸다. 대학로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 벽돌의 샘터 건물을 떠나 이웃한 혜화동 언덕에 새로운 샘터를 일군 것. ‘어려운 출판계 살림에 샘터마저 집을 떠나는구나’라는 생각이었지만 직접 확인한 속내는 달랐다. 샘터사 창립자 고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지난해 작고하면서 발생한 상속세를 남김없이 납부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창립자가 떠난 후, 1995년부터 부친을 이어 샘터사를 이끌고 있는 김성구 대표에게 남은 건 두 가지 유산이었다. ‘샘터 정신’이라는 무형의 유산과 담쟁이덩굴 뒤덮인 유형의 유산 ‘샘터 건물’이다. 김 대표는 정신을 지키기 위해 건물을 처분했다. “그래도, 샘터인데”라고 아쉬워 할 당신에게 소개한다. 이것은 화려한 서곡이 끝나고 이제 진짜 1막에 접어든 샘터의 혜화동 시대, 인트로(Intro)다.

 


 

남다른 행복론 지키는 일이 ‘진짜 1막’ 주제

상속문제는 잘 해결되고 있느냐는 첫 질문에 기나긴 방학숙제를 이제 막 끝낸 듯한 소년의 표정을 한 김성구 대표가 말했다. “어제(9월 28일) 다 냈습니다. 네, 다 냈어요. 저 이제 빚 없습니다. (웃음)”

빚 없는 만큼 돈도 별로 없는데 홀가분하다며 물색없이 좋아하는 사장님이 못내 걱정인 샘터사 총무팀의 걱정을 뒤로 하고 김 대표는 그래도 연신 웃음을 지었다. 가능한 한 ‘이탈자’ 없이 사무실 이전까지 완료한 이후 이제 발목에 묶인 묵직한 모래주머니 없이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은 품새였다. 출판계에 계속 남을지를 고민하다 이사 직전 퇴사한 1명을 제외하고 오래 전부터 인연을 이어 온 직원들을 포함해 샘터 작업을 하는 이들은 모두 혜화동으로 함께 옮겨 왔다. 다만 청소 및 건물 관리를 맡고 있는 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일부 옛 사옥에 남거나 떠나 보내야 했다. 김 대표에게 가장 아픈 부분이다. 모친서부터 대를 이어 샘터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 남편의 사업 부도로 샘터에 취직했다가 한 푼 두 푼 모아 10년 전 서울에 아파트를 구입한 사람까지 월간 <샘터>(이하 월간 샘터)에 담긴 평범한 모두의 글만큼 샘터사를 이루고 있는 식구들의 사연도 우리네 그것과 같았다. 그래서인지 김 대표는 포기할 수 없었던 샘터의 정신만큼이나 공간 규모는 줄이면서도 샘터를 만드는 사람들과는 최대한 그대로 함께 하고 싶었다.

“제가 직원들에게 뭔가 부드럽고, 겉으로 상냥하게 잘 해주는 성격은 못 됩니다. 오히려 정신 바짝 차리고 우리 모두 잘해야 한다고 채찍의 역할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이렇게 오랫동안 샘터를 지켜주고 있음이 늘 고마워요. 정말 고맙습니다. 사람이 만드는 잡지인데, 사람 귀하게 여겨야죠.”

김 대표가 생각하는 샘터는 그러했다. 샘터사 건물이 갖는 사회·문화적 의미야 김 대표가 모를 리 없었다. 대학로의 명소이자 추억의 장소, 거기다 파랑새극장은 대학로 최초의 소극장으로서 대학로를 명실공히 연극의 산지로 만든 역사성이 깃든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샘터는 근본적으로 건물보다는 ‘정신’이 출발점이었다. 잡지부터 시작해 단행본, 아동서, 파랑새극장까지 창립자가 후대에 전하고자 했던 샘터의 정신은 평범한 이들의 행복과 모든 어른들이 갖는 마음의 고향이라는, 동심이었다. 그것이 새롭게 자리한 혜화동 사옥에서도 중요한 정신적 기둥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만큼 샘터의 식구들은 같은 마음으로 각오를 다지고 뭉쳐있다. 눈빛만 봐도 아마 서로의 마음을 알 것이라고 김 대표는 자신한다. “진심이요. 서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진심이라는 걸.”

산업화시대에 지친 국민들의 애환을 달래며 묵직하게 자리를 지켰던 샘터의 시간은 어쩐지 거대한 오페라의 화려한 서막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두의 이목을 끄는 붉은 장막을 걷어낸 지금, 샘터는 이제야 비로소 제1막을 열었는지 모른다.

 

평범한 이들의 행복·동심의 세상이라는 변함없는 두 기둥

스스로 불행하길 바라는 사람은 아마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모두가 행복을 원하지만 그 행복의 모양은 각기 다르게 마련이다. 김 대표가 짚은 ‘행복’은 사람에 따라 10분 만에 사라질 수도 또는 며칠 만에 사라질 수도 있는 기쁨이 둔갑한 가짜 행복이 아니라 자신이 행복이라 믿는 목적으로 가는 과정 자체다. 그 안에서 행복해 하고 그것을 주변과 나눠 배가시킬 수 있는 것 말이다. 월간 샘터 표지 상단을 꾸준히 수놓고 있는 ‘내가 만드는 행복, 함께 나누는 기쁨’으로 대변되는 샘터 고유의 행복론이라고 할 수 있다.

“행복은 누군가 공짜로 주는 것도 아니고, 사실 부모를 잘 만나거나 비싼 차를 타고 집을 산다고 해서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 스스로가 노력해서 만들어야 진심으로 무게감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샘터에서 출간하는 단행본이나 월간 샘터, 아동서 모두 이런 면에서 틀을 같이 해요.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바뀔 수 없는 게 있거든요. 물론 책으로만 전달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매체를 다양하게 꾸려 보다 효과적인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겠죠. 이건 샘터만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 문학에서 방법론적으로 추구하는 바고요.”

창립자의 샘터 시대는 폭발적인 경제성장 이면에 가난하고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에 더 나은 삶을 꾸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 평범한 국민들이 다수이던 때였다. 학교 대신 일터로 내몰린 젊은이들은 스스로에 대한 프라이드보다 비애가 많았고, 그들 모두에 연민이 침잠한 시기였다.

김 대표는 당시의 샘터가 그들에게 자신을 사랑하고 보다 나은 삶을 좇으며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역할은, 지금도 여전하다. 다만 그 배경이 천지가 개벽했다고 여길 정도로 변화무쌍한 현대사회로 바뀌었을 뿐이다. 행복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은 그대로다. 누구나 행복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 어떤 산 정상에 행복이 있다고 하면 정상으로 가는 길은 어쩌면 수천, 수만 갈래일 수 있다. 누군가는 직선으로 나 있는 걷기 좋은 계단을 끊임없이 올라갈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굽이치는 둘레길로, 계곡으로, 마티고개처럼 돌고 돌아 올라갈 수도 있다.

“샘터가 추구하고 찾아가야 할 방향이 여기에 있어요. 누구나 행복을 원하는데 모두 다른 삶을,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거든요. 요즘 말로 금수저라고 해서 행복에 빨리 이르는 것도, 흙수저라고 해서 행복을 못 느끼는 것도 아니에요. 샘터는 바로 그 수만 갈래 길로 표현되는 행복에 관한 단상들을 성실하게 담아갈 겁니다.”

 

(왼쪽) 샘터 창간호 / (오른쪽) 사옥 내 전시된 『월간 샘터』 과월호
(왼쪽) 샘터 창간호 / (오른쪽) 사옥 내 전시된 『월간 샘터』 과월호

창간 50주년 향하는 샘터와 사람들

어린 시절부터 샘터에 깃든 부친의 정신을 꾸준히 듣고 자란 김 대표였기에 이렇듯 행복을 대하는 지론은 몹시 확고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47년간 월간 샘터를 지나간 사람들의 숫자만 해도 헤아리기 어렵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되도록 많이 담는다는 월간 샘터 창간 취지에 따라 과거에는 ‘독자 투고’라는 방식으로 많은 사연들이 샘터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현대 소통창구와 기술이 혁신적으로 발달하면서 기승전결이 제대로 갖춰진 투고 글을 받기가 점차 어려워졌다. 처음엔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다양한 방법으로 독자들의 사연을 받고자 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샘터의 정신만큼 샘터만의 ‘아날로그 네트워크’가 갖는 힘은 발달한 웹서비스가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었다. 현재 월간 샘터 잡지부는 인터넷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금껏 아울러 놓은 샘터의 그물에서 끊임없이 가지를 뻗어 새로운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있다. 정기구독자 1만 여 명 중 구독 기간 10년 이하의 독자는 거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샘터가 가진 ‘이야기’ 저력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으리라.

“일단 식구와 같은 우리 독자들이 샘터의 이야기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어요. 독자들의 좋은 생각과 경험들을 월간 샘터나 단행본으로 소화시킬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죠. SNS뿐만 아니라 이달의 작가상, 40년 간 이어 온 샘터상이나 샘물상을 유지하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원고를 확보하고 있고요. 샘터상 중 동화상과 시조상은 등단의 길로 이어지기 때문에 출신 문인들도 꽤 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유료 월간지 정기구독자가 1만 여 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들이 발행인에게 손 편지로 안부를 전할 만큼 애틋한, 가족 같은 관계라는 것에 샘터가 왜 현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1년 동안 취재를 통해 알게 된 이들 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선정해 역시 독자들로부터 받은 기부금을 전달하는 ‘샘물상’ 역시 샘터만의 행복론이 깃든 행사로 꼽힌다.

“유형의 자산은 여전히 대학로에 있습니다. 샘터 옛 사옥을 인수한 공공그라운드 측이 파랑새극장 등 주요 문화시설을 유지해주기로 했기 때문에 아마 당장 ‘염려’할 일이 발생할 것 같지도 않고요. 제 바람이죠. (웃음) 중요한 것은 이처럼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지켜 나갈 무형의 자산이에요.”

 

(왼쪽) 김재순 창립자 흉상 / (오른쪽) 옛 사옥
(왼쪽) 김재순 창립자 흉상 / (오른쪽) 옛 사옥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며 변화 맞는 샘터의 방법

샘터사가 꾸려갈 미래에 대해 들으면서도 여전히 대학로의 상징, 붉은 벽돌의 샘터 옛 사옥에 대한 생각을 떨칠 길이 없던 차에 건물을 인수한 공공그라운드의 계획이 김 대표의 입에서 나오자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아무리 상속세 때문이기는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형의 자산이라고 했지만 김 대표에게 역시 옛 사옥은 뜻 깊은 장소일 테니 말이다. 공공그라운드는 사회운동단체인 기본소득청‘소’년 네트워크에서 주최하는 행사 ‘공공그라운드’에서 이름을 따 온 부동산 임팩트 투자회사다. 다음 커뮤니케이션 설립자 이재웅 씨 등이 투자자로 참여해 지난 8월에 문을 연 뒤, 인수한 샘터 옛 사옥에서 신생 벤처기업이나 비영리기구에 협업 공간을 제공하는 신생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직원 월급, 필자들에게 줘야 할 원고료, 하다못해 잡지나 책을 인쇄할 종이 값마저 현금으로 지급해야 하는 출판계 상황에서 현금을 많이 확보하고 있을 수는 없었어요. 사업에 필요한 금액이 모자라면 건물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샘터사가 건물을 계속 지킬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정이 있었으니 이왕이면 우리와 비슷한 가치를 가진 이들에게 건물을 넘기고 싶었죠.”

물론 동숭동을 떠났다고 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끌어온 출판문화사업을 ‘출판’에만 국한 시킬 생각은 아니다. 샘터사 단독으로 진행할 수 없는 부분은 보다 나은 수단을 가진 업체와 협력하는 등 지향점만 같다면 유연하게 사업을 이끌 계획이다.

“저는 월간 샘터의 발행인이에요. 발행인의 역할은 샘터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이뤄내는 게 가장 기본이죠. 정치적인 바람을 탈 수도 있고, 그 시대에 대단히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잠시 지나가면 청문회에 나가야 하는 사람을 알아봐야 할 수도 있어요. 잠깐은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정작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요. 저는 그러한 판단을 해야 하는 사람이죠.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가치, 상하좌우 세대를 따지지 않고 종교로 가르지 않으며 편향되지 않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게 샘터 식구 모두의 가치고요. 늘 찍던 앵글로만 사진을 찍으면 얼마나 재미없겠습니까? 같은 풍경, 같은 사물이라도 다른 면을 찍어 보여줄 수 있는 샘터로 만들어 갈 겁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